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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Oct 28. 2020

안정된 삶이 기괴하게 다가올 무렵


서른둘, 내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나이다.      


서른이 되자마자 내 주변에 등장하기 시작한 오지라퍼들은 “30대인데 그러고 살면 인생 끝난다”라는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만 하고 살다 남친 마저 도망가 버리면 인생 끝장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헛소리에 왜 귀를 기울였나 싶긴 하지만, 그때의 나는 결혼이 유일한 해방구라고 생각했다. 싱글 여성을 구태여 깎아내리려는 못된 심보들은 결혼만 하면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내 커리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결혼이라고 생각했던 순진했던 나이 서른둘.      


그러나 임신기에 이르러 이 모든 기대들은 처참히 무너졌다. 회사는 남자 직원(의 아내)의 임신에는 자기 일처럼 환호하지만, 여자 직원 본인의 임신에는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인생에서 직장 내 여성차별을 느낀 최초의 순간이었다. 조직 내에서 내 처지는 깍두기에 지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땅따먹기 놀이를 할 때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온 게임의 룰도 제대로 모르는 코흘리개 같은 존재. 내 지난 커리어들은 모두 무용해지고 나는 룰도 모른 채 덜컥 임신이나 해버린 천덕꾸러기가 돼버렸다.


회사 사정으로 출산 휴가 3개월만 쓰고 복직을 했을 때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칼퇴는 애엄마의 무책임으로 읽혔고, 결국 사표를 쓰게 만든 트리거는 ‘육아 휴직이나 쓰라’는 동료의 이죽거림이었다.      


사람들에 상처 받아 결국 10여 년의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즈음 조직을 바라보는 시야와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그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당연했던 회사를 다니는 삶이 상당히 비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흔히 가장 무난하고 평범하다고 말하는 9-6의 삶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그다지 장점이 없는 삶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출퇴근 시간으로 왕복 2시간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출근 준비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오전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거의 12시간을 회사를 위해 할애해야만 한다. 퇴근 이후에 아이들 저녁 해먹이고 씻기고 나면 이미 재울 시간이니 평일에는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1~2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쭉 아이들이 클 때까지 딱 요만큼의 시간만 함께 할 수 있는 게...... 현실이야?"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 인생이 축복받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어린이집 등 하원을 함께 사는 시부모님이 도맡아 해 주신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도 어린이집 등하원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를 새벽에 깨워 씻기고 울고 불며 매달리는데도 어린이집에 밀어 넣는 것이 워킹맘들의 하루의 시작이다. 아침에 혼자 준비하고 나가는 것도 벅찬데 축 늘어져 자는 아이를 깨워 씻기려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다음 날 입고 나갈 옷을 입혀 재운다는 엄마의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다. 아침마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나온 속이 편안 할리도 없다.


하원은 어떤가. 엄마나 아빠의 퇴근시간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어린이집은 찾기가 힘들다. 결국은 하원 도우미를 고용해 퇴근시간까지 돌봄을 맡겨야 한다. 비용은 비용대로 드는 데다 좋은 도우미를 찾아 신뢰를 쌓아 가는데도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많다.      


아이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 이제 겨우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넘었을 뿐인데 새벽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아빠나 엄마의 '빨리빨리'라는 채근을 견뎌내야 한다. 아직 엄마 아빠와 떨어지기 싫은 시기인데 억지로 어린이집에 구겨 넣어지고 나면 하원 시간에 엄마가 아닌 도우미 아주머니와 집에 가야 하거나, 혹은 부모가 회사에서 버텨야 하는 10시간을 어린이집에서 견뎌내야만 한다. 이 얼마나 혹독하고 이른 사회생활인가.      


아이도 엄마도 그리고 보통은 밤이고 낮이고 회사에만 붙어 있느라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은 아빠도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버텨낸 하루의 끝이 씁쓸했다. 회사에 투자해야 하는 나의 시간이 벌어오는 돈의 효용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도 생겼다. 기껏해야 지금 내가 회사를 통해 벌어오는 돈 혹은 앞으로 내가 벌 수 있는 돈은 아이 돌봄이나 사교육에 쏟아붓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데, 나는 무려 하루의 절반을 회사에 헌신하고 있다니. 어딘지 말이 되지 않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모두가 새벽부터 밤까지 온몸의 남은 기력을 짜내며 간신히 살면서도 늘 부족함으로 동동거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삶을 안정적이고 평범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우리의 삶이 어딘지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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