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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Oct 27. 2020

결국, 우리는 양평으로 갑니다

양평에 땅을 200평 사버렸다.


이제 우리는 그곳에 집을 지을 것이다. 2층 집에 다락까지 하나 더 올릴 계획이다. 다락은 큰 아이의 놀이공간을 만들어, 남자아이 치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아이가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2층의 방 한 칸은 남편의 작업실 겸 서재로, 그 옆의 가족실은 나의 요가룸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1층엔 너른 주방과 거실, 그리고 우리의 부부 침실과 아이들 둘의 공용 놀이방을 또 만들 것이다.


당분간은 부부 침실에 패밀리 침대를 두고 네 가족이 함께 자야 할 테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1층 놀이방은 딸아이 방으로 만들어 줄 계획이다. 큰 아이가 다락이 아닌 온전한 방을 갖고 싶다고 하면 우리 작업실을 내어줘야겠지. 그러면 안방을 작업실 겸 서재 겸 침실로 사용하지 뭐.


우리의 2층 집 앞으로는 정원도 있다. 한 켠에는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또 한 켠에는 텃밭도 만들어 웬만한 야채는 손수 재배할 것이다. 나는 손재주가 영 없지만, 남편은 손으로 만드는 것은 모두 잘 해낸다. 농부와 목수가 되는 것이 그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니, 든든하다.


지인들이 놀러 오면 정원에서 바베큐 파티도 하고, 여름에는 잔디밭에 아이들 수영장도 만들어 주어야지.


아직은 땅만 200평 샀을 뿐인데, 우리의 삶이 달라졌다. 희망으로 꽉 찼고 미래가 보인다.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벅차다.


내 집을 갖는다는 것. 그것도 꿈에도 그리던 드림 하우스를 현실로 이뤄낸다는 것이 이토록이나 삶을 희망차게 만들 줄이야. 부부 사이 대화도 늘어났다. 우리는 수시로 집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다. 가끔 남편이 내는 황당무계한 의견에도 나는 너그러워졌다. 물론 들어주진 않지만, 웃으며 "적당히 하라"라고 말할 정도.


양평이라니. 미국보단 가까우나, 마음으로는 어쩌면 더 멀었을지도 모를 그곳에 우리의 삶이 놓일 것이라니. 우리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건 양평으로 떠날 결심을 하기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하더라도 단 한 번도 양평을 떠올려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속전속결.  


주변의 모든 지인들이 우리의 행동에 혀를 내둘렀지만, 우리는 확신으로 꽉 찼다. 그곳에 우리의 드림하우스가 있다. 그곳에 우리의 진짜 삶이 있다.


모든 것은 양평 살이 7년 차 주부의 글에서 시작됐다.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글에는 내가 원하는 삶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아이들과 전원생활을 1년만 해보자고 왔던 양평에 7년째 눌러앉게 됐다는 그녀의 삶을 읽어 내린 순간, 나는 '이거다!' 싶었다.


그동안 부동산 사이트를 샅샅이 뒤지고 뒤져 우리의 예산에 맞는 집이 나오면 직접 동네도 갔다 와보고 매물도 들여다본 것이 수십 번. 그러나 내 집은 딱 보면 알아본다고 하던데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그놈의 느낌이, 그 글에서 느껴졌다. 집은 보지도 않았고 동네는 어떤 곳인지 감도 오지 않는, 얼굴도 모르는 그녀가 지난 7년간 아이들을 기르며 느낀 유쾌함 들을 적어 내린 글 한 편이 나의 집, 우리의 집을 찾게 해 줬던 것이다.


그 길로 나는 남편에게 양평에 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회사에서 일하던 남편은 이 뜬금없는 말에 무성의하게 대응했지만, 기어코 그 주말에 우리는 양평으로 향했다. 인터넷을 뒤져 우리 예산에 맞고 시댁과도 그리 멀지 않은 양평의 서쪽을 둘러보고자 했다. 미리 예약을 해두고 찾아간 모델하우스 주소를 남편에게 읽어주는데 남편은 이런 내가 여전히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이다.


우리 부부로 말할 것 같으면, 충동적인 편은 대게 남편이고 나는 보통 그런 남편을 자제시키기 바쁘다. 그런데 오늘은 완전히 거꾸로 된 상황이었다. 가는 내내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남편은 어떤 감정이었을지 모르겠다. 주말 나들이하는 셈 치고 가보자는 가벼운 마음 정도였겠지?


내가 찍어준 주소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길이 급격한 시골길로 변해있었다. 구불구불, 울퉁불퉁. 주변은 온통 논과 밭이고 앞으로 보이는 건 우거진 산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빼곡했던 아파트들은 흔적도 없다. 정말이지 명백하게 시골이다.


갑자기 남편이 뒷좌석에 아이들과 앉은 나를 쳐다본다.


"당신이 이런 데에서 살겠다고?"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버린다. 나는 그런 남편의 웃음에 발끈한다.


"일단 가보자고! 일단! 가서 이야기하자!"


머지않아 그 길에 끝에 다다랐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보고, 그 땅 앞에 펼쳐진 조망을 바라보고, 이미 지어진 이웃들의 집을 구경한 다음 반전이 일어났다. 남편은 계약을 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오히려 내가 말렸다. "우리 오늘 세 군데 보러 갈 거야. 처음 온 곳에서 집 계약하는 사람이 어딨어."


간신히 남편을 뜯어말려 집으로 왔지만, 내 마음도 이미 그 집에 가있었다. 우리는 5일의 고민 끝에 결국 계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만큼 그 집이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봤던 집들이 양평에 있었던 것이다. 지난 수년간 꿈꿔온 집이었는데 계약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속전속결, 누가 보면 미쳤다 할 정도로 급작스러운 실행이었지만 양평살이는 그렇게 쉽사리 허락되지만은 않았다. 땅 계약을 마무리 짓는데만 무려 6개월이 걸렸다. 그러고 나니 이제 겨울. 겨울에는 보통 집을 짓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하니, 우리는 내년 봄까지 또다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 기다림도 즐겁다. 이제 우리 집이 생기니 말이다. 차츰차츰 그곳으로 갈 준비를 하는 이 모든 과정이 행복에 겨웠다.


결국 우리는 양평으로 간다. 오랜 시간 미국행을 소원했던 이유는 오로지 집 때문이었다. 그토록이나 집을 염원했던 이유는 또 그 집 안에서 살 수 있는 우리의 빛나는 삶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우리는 내년 여름이면 완공될, 우리를 꼭 닮은 집을 꿈꾸며 하루를 살아낸다. 이제는 우리의 하루가 힘들지만은 않다. 삶이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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