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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Oct 27. 2020

"여보, 나 사실 아파트 싫어"

"어쩌지, 여보, 난 빌라가 더 싫은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찾으려 애썼다.


2000만 원 늘어난 예산을 매만지며 시댁 근처 동네의 부동산을 매일 같이 검색해봤다. 그러나 서울 송파는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다. 학군도 좋고 녹지 환경도 잘 조성이 되어 있어 아이들을 키우기엔 참 좋은 동네인 만큼, 이곳의 집값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고고했다.


20평대의 30년은 훌쩍 넘은 아파트는 모두 8억 원을 넘어섰다. 대단지의 신축 아파트는 언감생심, 쳐다도 보지 않았다. 감히 꿈꿀 수 없는 것이 생긴 인생이었지만 낙담할 시간도 없었다. 우리는 이제 시댁 근처 경기지역까지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꼭 아파트여야만 하느냐 묻는다면, 첫 빌라 매매의 실패가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부동산에 내놓은 지 1년 만에 그 빌라를 겨우 팔았다. 그나마 팔 수 있어 다행이라며 안심하고 뒤돌아서자 곧장 씁쓸해졌다. 일찍이 아파트를 산 친구 부부는 자산가치가 수억 원이 올라있었다.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인생의 큰 격차가 벌어진 기분이었다.

 

그러니 두 번째도 덜컥 빌라를 매매할 수는 없었다. 오로지 아파트였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돈에 영끌 대출을 붙여보아도 7억~8억은 무리였다. 부동산을 검색하고, 대출 가능금액과 이자를 두드려보며 한숨이 늘었다.


그때 남편이 툭 던지듯 말했다.


"나는 근데 아파트가 싫어."


서울살이에서는 좁디좁은 원룸에만 갇혀 살긴 했지만 나는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 줄곧 아파트에서 살았다. 딱히 아파트가 싫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아파트가 얼마나 편한데, 왜 싫어?"


"그냥, 답답하기도 하고 아이들 키우기에 좋은 지도 잘 모르겠고. 생각 같아서는 전원주택 지어서 살고 싶다."


한국에서 전원주택이라니. 미국도 아니고. 나는 남편의 그 말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미국도 아니고 전원주택에서 어떻게 살아..."


물론, 나 역시도 미국에서 본 하우스들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에서 그만한 전원주택은 가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나도, 그만한 돈이 있다면 그런 집에서 살고 싶지 당연히.


사실 아파트는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은 주거한경 아닌가. 어차피 우리 예산으로는 신축의 대단지 아파트는 무리일 테니 결국 지어진지 수십 년 된 아파트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수천만 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층간소음 이슈도 아파트의 단골 문젯거리다. 가뜩이나 우리 아이들은 코로나로 집콕만 하면서 수시로 쿵쾅거렸다. 집 안에서 구르고 뛰며 그나마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들의 뒤를 쫓으며 "가만히 있으라"라고 채근하는 것도 몹시 피곤할 일이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은 아파트 아니면 빌라. 둘 중 택일이었다. 그러나 빌라는 아파트보다 더 사면 안 되는 이유가 많았다. 너무도 잘 알게 됐다시피, 잘 팔리지 않는 데다 가격 상승률도 높지 않다. 주차 문제는 늘 사람을 번거롭게 만들었고, 아파트에 비해 크게 싸지도 않은데 층간소음 문제는 그대로다. 그나마 아파트는 단지 내 놀이 시설이라도 있지, 빌라는 집 밖을 나오면 바로 도로가 뻗어 나와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휴. 부동산 앞에만 서면 한없이 초라해지는 우리는 뾰족한 대안을 찾아내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남편의 전원주택 타령을 시작으로, 우리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제주도로 이주할까?"

"제주도엔 전원주택이 있긴 하겠네."

"남해 쪽으로 이사 가는 건 어때?"

"남해는 좀.. 너무 뜬금없다."

"동남아로 이민 갈까?"

"좋지. 아이들 영어 교육도 시킬 수 있고. 나는 그런데 미국에서 더 살고 싶어."

"언젠간 가야지. LA로."


말은 참 번지르르. 티키타카. 죽은 참 잘 맞는 우리였다. 그러나 그런 말들 사이 우리는 당장 코 앞의 현실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을 감추고 있었다. 어쩌면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파고 들어가다 보면 결국 지치게 될까 두려워 뜬금없는 이주 계획들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에는 힘이 있다더니 진짜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진짜 그럴 용기는 없었는데, 결국 말이 씨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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