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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Oct 25. 2020

우리의 드림 하우스는 미국에 있었다

미리 고백하자면, 우리의 드림 하우스는 미국에 있었다.


미국과의 인연은 신혼여행에서 시작됐다.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장장 4개 주를 아우르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우리에게 정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LA의 하우스들이었다. 그 집에 반해버려 우리는 이후에도 서너 번 미국을 다녀왔다. 이제는 아예 다른 주로는 가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캘리포니아, 그것도 LA 다운타운과 한인이 많이 사는 어바인 만 깊이 팠다. 거의 현지인 뺨칠 정도로 지리를 익히기도 했다.


미국에 가서 우리가 한 일은 동네 산책이었다. 마치 현지인처럼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산책하고 집들을 구경했다. 어느 날은 큰 마음을 먹고 모델하우스를 찾기도 했다. 그렇게 집 구경들을 하고 나면, 우리의 진짜 삶은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아, 정말 그러길 간절히 바랐다. 날씨는 사시사철 좋으며 아이가 뛰어놀기에 한없이 넓고도 푸르른 어바인의 공원들을 보면 "아이는 이런 곳에서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집집마다 그 공원을 빼닮은 아늑한 정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나로선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입이 떡 벌어졌다. 자, 이제 그림 같은 2층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보자. 큼직한 창고 겸 차고를 지나 집으로 들어서면 ㄷ자의 주방이 보인다. 골드 컬러의 수전과 깔끔한 화이트 서랍장에 앤틱 한 손잡이는 왜 그리도 이국적이고 예쁜 걸까. 한국의 무수한 아파트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기자기함들. 거실의 한 공간을 차지한 벽난로나 뽀송뽀송한 건식 화장실은 너무도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집을 놓고 이토록 열렬한 사랑에 빠진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남편을 부둥켜안으며 반드시 이런 집에서 살아야만 한다고 꺅꺅거렸다.


그런 나날들을 보내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침울했을까. 현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참으로 무거웠다. '반드시 다시 미국으로 가야지. 꼭 그곳에서 살아볼 테야.' 야무진 결심을 차곡차곡 채워 넣는 것으로 피로감을 애써 떨쳐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를 LA로 데려다주지 못했다.


가끔 이민 카페를 들락거리거나 갈 재간도 없는 미국 대학원을 검색해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던 날들도 점차 멀어져 갔다. 우리는 점점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미국의 집들은 우리에게 첫눈에 반했으나 손 한 번 못 잡아본 아련한 짝사랑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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