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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Oct 25. 2020

30대 부부, 서울에서 도망치다

우리는 서울을 떠난다.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30대 부부인 우리. 남편은 서울에서 태어나 30여 년을 한 동네에서만 자랐고, 아내인 나는 '인 서울' 대학 진학에 성공한 지방 출신으로 이후 10여 년을 서울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우리는 결혼 5년차에 탈 서울 결심을 굳혔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부동산, 대출, 아이들 교육, 노후대책 등을 주로 고민하며 산다. 대부분의 평일은 칼퇴를 목표로 살아내고 있고, 대부분의 주말은 평일엔 늘 우선순위에서 밀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로 채워나갔다. 지난날 우리의 생이 딱히 불우하다거나 또 딱히 행복하다고도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 주변의 많은 부부들도 이와 같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남들과 엇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안도감. 그것은 행복과는 다른 종류였으나 꽤나 우리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지극히 사소한 흔들림에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날들이 차츰 늘어났다. 예를 들어, 틈만 나면 "육아휴직이나 쓰라"며 나를 밀어내는 동료의 이죽거림을 마주한 날, 억지로 껴입은 옷 속에서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아이의 울상이 비칠 때. 그리고 월급 한 푼 두 푼 모아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집값의 현실을 목도했던 순간도 그러했다. 써놓고 보니 딱히 사소한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해도 누구만큼은 열심히 살아본 우리다. 그러나 절망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의 삶을 파고든다. 우리의 절망들은 대게 지금의 노력들이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찾아오곤 했다. 가끔 모든 것을 놓고 시골로 숨어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고갯짓을 하기도 했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출근도장을 찍는 보람이 없는 삶. 안갯속에 갇힌 미래를 향해 발버둥은 쳐보는데 행복은 늘 요원하다. 때론 행복이란 말이 지나치게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우린 그저 안정을 느끼고 싶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놈의 안정, 결혼하고 애 낳으면 찾아온다는 사람들 다 어디 갔어! 


나는 이따금 우리의 삶이 반원 모양의 흔들 시소에 놓인 것 같다고 느꼈다. 온전히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좌우로 갸우뚱거리고 있는 그 위태한 모양새가 무작정 열심히이지만 나아감이 없는 우리의 하루하루를 빼닮았다. 때로는 어리석게도 그나마 그 시소 위에 있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서로를 위안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삶에는 균형이 없다. 휘청거릴 밖이다. 자주 어지럼증을 느꼈다. 


결국 우리는 그 시소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투박하지만 단단한 평지에 서보려 한다. 서울살이를 접고, 양평으로 떠날 예정인 우리. 서울과 양평 사이 거리를 생각하면 이토록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이 맞나 싶지만, 양평은 분당이나 일산으로 이사를 가겠다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결심이다. 


아마도 우리의 삶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나와 남편의 직장생활도, 아이의 양육환경과 교육여건도, 주거환경이나 이웃과의 관계 등 삶을 구성하는 모든 굵직한 요소들이 변할 것이다. 결국 그 변화들은 우리의 마음까지 다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그 모든 변화를 겪어낸 우리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몹시 기대된다. 


성큼, 시소에서 내려온 것은 우리의 앞날이 울퉁불퉁한 돌길이 될지라도 좋으니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걸어가 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서울을 벗어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위태하게나마 유지해온 삶의 외피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자유의지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떠남을 공표하기로 했다. 


이다지도 평범했던 우리는 마. 침. 내 서울에서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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