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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Oct 29. 2020

코로나가 남편을 변하게 했다

남편이 변했다.


지난봄, 코로나가 우리 일상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직전 나는 프리랜서로의 삶을 서서히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다.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보고자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있던 중, 그놈의 지긋지긋한 바이러스로 모든 계획을 미루고 육아에 전념해야 했다. 둘째는 아직 돌도 되기 전이었고, 5살 첫째도 기관을 다니지 못하게 됐다. 두 아이 독박 육아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내 숨통을 트이게 해 준 것은 남편의 재택근무였다. 업무시간에는 서재에서 일을 하고 식사 시간에만 가족과 함께 했지만, 나는 그마저도 좋았다. 점심시간 음식을 만들어 차릴 때 아이 둘을 돌봐주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가. 남편이 없었더라면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내내 내 다리를 붙잡고 울부짖는 아이들과 몸싸움을 해야  했을테니 말이다.


남편은 직장 생활에서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경험하면서 일과 삶의 밸런스에 대해 생각을 해본 눈치였다. 그 전에는 돌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시간이 부족했던 남편이었지만, 세 끼의 식사를 함께 하고 1시간 반은 훅 당겨진 퇴근 시간을 활용해 아이들과 놀 수 있게 됐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누려보게 된 것이다.


남편의 변화를 눈치챈 나는 수시로 "출근하는 게 좋아? 지금이 좋아?"라고 물어봤다. 남편은 그때마다 "당연히 출근 안 하는 게 훨씬 좋지"라고 대답했다.


"2시간은 훌쩍 넘는 출퇴근 시간이 절약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달라진다니. 그 전엔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말이야."


나는 출퇴근 시간 포함, 하루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온전히 회사에 쏟는 상황에서 일과 삶의 밸런스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살짝이라도 드러내면 남편은 늘 "그렇게 일 안 하는 사람 어딨냐"며 흘려들었다. 하지만 막상 3시간에 가까운 출퇴근 시간이 절약되자 남편은 아이들과 살을 부비적거릴 틈이 생겨났고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일들을 할 시간도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는 불과 2주 만에 끝이 났다. 재택근무의 단 맛을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남편은 다시 새벽에 일어나 빽빽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로 자신을 실어 나르는데 시간을 썼다. 잠들기 전 아이들과 깔깔거리며 웃던 시간들을 뒤로한 채 말이다.


나 역시 남편의 빈자리가 꽤 크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시 집에 갇혀 엄마를 독점하기 위해 하루 종일 울음을 달고 다니는 아이들과 씨름하며 코로나를 견뎌야 했다. 지치고 지치던 와중에 남편은 내게 말했다.


"나 육아휴직 쓸까 봐..."


남들은 이 말이 참 무섭게 들린다던데, 나는 반가울 따름이었다.


"그래? 그럴래? 그럼 나도 준비만 해오던 일을 시작해보지 뭐. 어떻게든 돈 벌어와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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