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인 2021년 방영 드라마 추천 베스트 10
어느덧 2021년도 끝자락에 다다랐다. 한 해 동안 TV, OTT 등을 통해 새로운 드라마들이 대중에게 다가왔다. 아직 정주행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한 번쯤 보는 것을 조심스럽게 추천해보는 베스트 10이다.
※ 2021년 1월 1일 방영~12월 23일 종영 기준. 직접 시청한 작품들 중에서 선정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왜 없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10위 JTBC '구경이'
최고시청률 2.7%(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영애의 5년만 드라마 복귀작인 '구경이'의 유일한 옥에 티. 반대로 말하면, 시청률을 제외한 드라마 필수 요건인 작감배(작가, 감독, 배우) 3요소 중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다는 뜻이다.
'구경이'는 기존 드라마들이 선보였던 패턴을 영리하게 비튼 '이상한' 작품이다. 근래 보기 드물게 여성 캐릭터들이 전반에 나서서 스토리라인을 주도하고, 매회 예측 불가능한 반전과 긴장감을 안기며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여기에 '친절한 금자씨'에 이어 독특한 캐릭터 구경이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이영애를 비롯해 똘끼 충만한 사이코패스 빌런 케이로 미친 존재감을 발산한 김혜준 간 팽팽한 기싸움은 '구경이'의 관전 포인트. 이들을 둘러싼 김혜숙, 곽선영, 조현철, 백성철, 이홍래 등도 통통 튀는 개성을 발산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더욱 돋보이게끔 만화처럼, 때로는 게임처럼 감각적으로 표현한 이정흠 감독의 세련된 연출과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BGM으로 '구경이'의 묘한 분위기를 강조한 김태성 음악감독의 안목도 느낄 수 있다.
★★★☆
9위 넷플릭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3
교내 섹스클리닉을 열어 같은 학교 친구들의 성 고민을 해결해주던 오티스(에이사 버터필드)와 와일리(엠마 맥키), 그리고 무어데일 고등학교 학생들은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3을 통해 각자 자아를 찾아가며 한 단계 성숙했다.
시즌 2에선 등장인물 간 다양한 관계성에 집중하면서 성에 대한 서사를 풀어냈다면, 이번 시즌에서는 '성교육'으로 확장하며 스케일을 키웠다. 신임 교장으로 부임한 호프(제미마 커크)는 떨어진 명예를 되찾고 학교를 정상화하겠다며 극단적인 보수적 성교육으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수치심을 준다. 이에 자유분방했던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인물들의 연대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주요 배경인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해당된다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그러면서 관계나 갈등이 원하는 대로 풀리진 않는다는 것, 성인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 또한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를 딛고 극복하는 인물들을 자꾸만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시즌이었다.
★★★☆
8위 tvN '빈센조'
지난 4월 막을 내린 '빈센조'는 국내에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는 다크 히어로물의 신조를 포문을 연 초탄이 된 작품이다. 더불어 원톱 주연이었던 송중기의 진가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빈센조'는 악명 높은 이탈리아 마피아보다 더한 '마피아들의 카르텔'을 꼬집는 풍자와 거칠고 화끈한 마피아 방식으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김과장', '열혈사제'에서 선보였던 박재범 작가 특유의 코믹사이다 스타일에 다크하고 잔혹함이 몇 스푼 더해졌고, 미장센 장인으로 유명한 김희원 감독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영상미와 연출력이 만나면서 한 편의 오페라처럼 웅장했다.
'빈센조'에 출연한 주·조연 배우들 모두 한가닥 하는 존재감을 드러내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송중기 없이는 '빈센조'는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브라운관을 장악하는 그의 아우라와 다채로운 감정선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송중기에 스며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7위 SBS '모범택시'
'빈센조'로부터 다크히어로물 바통을 이어받은 '모범택시'. 강도나 자극성은 '빈센조'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이 작품은 제목이 반어법이다. 전혀 모범적이지 않은데 바라게 되는 사적 복수 대행을 보여주며, 동시에 되새김질해보는 사적정의와 공적정의간 충돌 및 올바른 방향성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김도기(이제훈)를 필두로 한 무지개운수 팀의 사적복수대행이 그릇된 방식임을 알면서도 통쾌함을 느낀다는 건, 마음속 응어리와 사회 부조리를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주기 때문. 제작진은 끔찍한 실화들을 재구성해 경각심을 심어주면서 공권력 사각지대 피해자들을 위해 나선 무지개운수를 통해 시원한 대리만족을 선사했다. 현실과 판타지를 적절히 밸런스 맞추며 양쪽 모두 충족시켰다.
한편으로는 사적 정의도 언젠가는 선을 넘다 보면 공적 정의와 충돌하며 이 또한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걸 강하나(이솜)와 백성미(차지연)로 물꼬를 튼다. '모범택시' 후반부에는 이 비중을 크게 두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매회 마지막을 장식하는 엔딩 문구와 마지막 회 후반부는 작품을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려는 제작진의 태도가 엿보인다.
★★★☆
6위 SBS '라켓소년단'
이제는 가뭄에 콩 나듯 국내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든 無자극+청소년 성장 드라마인 '라켓 소년단'을 보고 있으면, 괜히 힐링이 되고 무해하고 순수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흔한 소년만화 공식을 따라가는 것 같은 '라켓소년단'은 윤해강(탕준상)과 해남서중 친구들의 성장담을 중심으로 그렸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대부분 미성숙하다. 그래서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실패 및 사건들이 에피소드별로 소소하게 나타났다. 보통 드라마틱하거나 선과 악을 확실히 구분 지으며 갈등을 유발할 법한데, '라켓소년단'에는 '발암유발자'는 있어도 빌런은 없다. 또 이들을 최대한 밉지 않게 표현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때부터 정보훈 작가가 밀어붙이는 성선설의 연장선상이다.
'라켓소년단'이 인상적인 건, 열여섯 소년소녀들의 성장담에 어른들이 주객전도식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격려하는 정도에 머물며 선을 지켰다. 그래서 어린 청춘들에게 더욱 깊게 몰입해 응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
5위 tvN '나빌레라'
총 12부작으로 구성된 '나빌레라'를 정주행하고 나면, '청춘'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새파랗게 젊고 창창할 때나 나이를 먹어 노년에 접어들어도, 청춘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심덕출(박인환)은 젊은 시절 마음속에 품어왔던 발레리노 꿈을 70대 노인이 돼서야 도전한다. 그를 가르치는 이채록(송강)과 덕출의 가족들은 '도전하기에 이미 늦었다'는 식으로 만류한다. 심덕출의 우여곡절 발레 도전기는 시청자들에게 꿈과 열정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주며, '도전하기에 이미 늦었다'는 실패를 두려워한 자기 합리화일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그래서인지 심덕출의 '백조의 호수'는 모두의 마음을 크게 일렁이게 만든다.
요근래 주인공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역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던 박인환의 재평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연기한 심덕출과 연령대가 비슷해서인지, '나빌레라'에서 보여주는 연기 하나하나가 울컥하게 만드는 포인트.
★★★★
4위 디즈니플러스 '완다비전'
마블 스튜디오 드라마 중 최초 에미 시상식 미니시리즈 부문 최고우수 작품상을 포함 총 2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완다비전'. 현재까지 공개된 MCU 페이즈4 작품들 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더불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완다비전'의 장점은 그간 마블 작품에서 보기 힘든 등장 캐릭터들의 내면 묘사를 디테일하게 하고 있어 감정적 밀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전까지 서브 주연 위치였던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의 비극적 서사와 감정선, 불안정한 상황에서 공포와 처절함을 느끼는 비전(폴 베타니)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특히 완다를 연기하는 엘리자베스 올슨의 탄탄한 연기력이 압권이다. 그래서 후속작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향한 기대치를 한껏 높이고 있는 중.
MCU 세계관 외적인 부분에서도 '완다비전'은 눈길을 끈다.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국 시트콤들의 클리셰와 오마주를 재치 있게 표현하면서 텔레비전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이는 마블 히어로 못지않게 플랫폼과 매체의 세대교체를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
3위 넷플릭스 'D.P.'
'D.P.'는 그동안 독립 영화, 저예산 영화 등 미디어 작품에서 상대적으로 마이너 축에 속했던 군 고발 소재를 메이저로 끌어올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김보통 작가의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한 'D.P.'는 탈영병을 체포하는 군무이탈 체포전담조의 시선으로 탈영병들과 병영 내 악습 사례들을 조명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안준호(정해인), 한호열(구교환) 두 캐릭터 간 케미스트리를 맛깔나게 살리는 밝은 버디물로 표현했고, 친숙한 캐릭터와 상황들을 나열해 군대 문화에 잘 모르는 이들도 이해할 수 있게끔 진입장벽을 낮췄다.
그러면서 군대 내부 고발적인 성격을 잊지 않으며 묵직한 분위기도 띠고 있다. 병사들이 탈영하게 된 이유 및 군대 내 일어나는 사건들을 에피소드로 풀어내되, 단순히 선악 구도로 잡지 않았다. 또 안준호와 한호열이 추적하는 탈영병들이 왜 탄생하게 됐고 폭력이 대물림되는 이유, 폭력을 두고 순응하고 저항하는 캐릭터들의 서사 및 전사까지 상상하며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
2위 넷플릭스 '지옥'
'지옥'은 스토리텔링 재주꾼으로 불리는 연상호 감독이 오랜 세월 구축해온 '연니버스'의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그가 표현해왔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지옥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지옥'의 장점은 불가해한 현상을 마주할 때 인간과 사회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면 속에 잠재된 불안함이 사람들을 끊임없이 뒤흔들며 의심의 시험에 빠뜨린다. 이는 곧 세상을 집어삼키는 공포로 발전하고 이를 악용하는 무리들과 진실을 밝히려는 집단의 시선과 상황을 풍성하게 담아내 눈길을 끈다.
'지옥'의 전후반을 담당한 주역들의 열연도 관전 포인트. 유아인과 김현주, 박정민을 중심으로 김도윤, 양익준, 김신록, 이레, 원진아, 류경수 등이 제 몫 이상을 해내며 연기 보는 재미를 더한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스쿼드를 자랑한다.
★★★★
1위 JTBC '괴물'
사람 인생은 이름 따라간다는 말이 있듯, 이 드라마 또한 제목처럼 '괴물' 그 자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방심할 틈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쳤고, 범죄 스릴러 특유의 쫄깃한 긴장감과 일관된 메시지 모두 놓치지 않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괴물'이 매우 소름 끼치게 다가왔던 이유는 20년 전 만양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일으킨 괴물들을 추적하는 이들이 점점 괴물이 되어갔다는 점. 이동식(신하균)은 지워지지 않은 주홍글씨와 편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괴물을 자처했고, 이동식을 괴물로 바라본 한주원(여진구) 또한 점점 동화되어갔다.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 또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괴물스러운 면이 부각됐는데, 잔인하고 무섭기보단 슬픈 구석을 띠고 있어 여운을 안긴다.
신하균은 '괴물'을 통해 다시 한번 '연기괴물' 명성을 입증하는 장악력으로 드라마 전체를 장악했다. 신하균과 적인지 아군인지 팽팽한 텐션을 안겼던 여진구, 소름 끼치는 반전을 선사한 이규회, 처절한 딜레마에 빠진 최대훈, '신인' 타이틀을 벗어던진 최성은 등 괴물연기자들이 대거 포진한 '괴물'은 연기 맛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