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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Dec 29. 2021

이제라도 보자! 2021 올해 영화 10

주관적인 2021년 개봉 영화 추천 베스트 10

어느덧 2021년도 끝자락에 다다랐다. 한 해 동안 극장, OTT 등을 통해 새로운 영화들이 대중에게 다가왔다. 아직 정주행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한 번쯤 보는 것을 조심스럽게 추천해보는 베스트 10이다.


※ 2021년 1월 1일~12월 23일 개봉 기준. 직접 관람한 작품들 중에서 선정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왜 없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10위 '모가디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등판하기 전까지 2021년 최다 관객 동원수 1위 주인공이었던 '모가디슈'. 어려운 시국에 장기 상영 릴레이를 이어가며 361만 명의 관객을 선택을 받을 만큼, 수준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던 한국 영화다.


국뽕, 신파로 도배될 수 있는 내용이나 '모가디슈'는 쓸데없이 뻗어나갈 염려가 보이는 잔가지들을 적절하게 가지치기한 채 오로지 탈출과 생존에 초점을 맞췄다. 주요 인물들과 분위기를 간략하고 효과적으로 나열하면서 아비규환이 된 모가디슈와 총성에 붉은 피를 흘리는 소말리아 사람들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소말리아 대사관으로 파견된 남·북한 사람들이 지옥에서 탈출해야 하는 명분과 분위기를 조성함과 동시에 저마다 다른 관점으로 상대방을 인식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모가디슈'의 중심축이 되어 극을 끌고 갔던 김윤석과 조인성, 허준호, 그리고 구교환의 존재감도 남달랐다. 김윤석과 허준호는 차분함과 냉정함으로 긴 호흡을 이끌어갔다면, 조인성과 구교환은 쉴 새 없는 뜨거움을 자랑하며 한껏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그 외 '모가디슈'에 출연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버릴 게 없다.


★★★☆


9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2001년작 '스파이더맨'부터 올해까지 20년 간 관객들을 만나며 '친근한 이웃'으로 사랑받아온 마블 히어로 스파이더맨. 역대 스파이더맨 실사 영화 중에서 '노 웨이 홈'은 단연 최고라고 치켜세워도 손색이 없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스파이더맨 버전 '엔드게임'이었다. '샘스파'(샘 레이미 버전 '스파이더맨') 3부작부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MCU '스파이더맨'까지 이를 하나로 엮은 거대한 멀티버스이자, 블록버스터였다. 화려한 물량 공세를 하는 만큼, 이야기 밀도나 설정 등에서 빈틈을 주지 않고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며 오락성과 작품성을 높였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메시지도 놓치지 않았다.


역대 스파이더맨 3인방(토비 맥과이어, 앤드루 가필드, 톰 홀랜드)과 빌런을 연기했던 배우들을 하나의 스크린으로 불러들여 섭섭함 없이 비중을 나눈 '노 웨이 홈'은 오랜 팬들에겐 추억을, 새로운 팬들에게 신선함을 안긴 대통합의 장이라 함이 옳다.  


★★★★


8위 '듄'


좀처럼 보기 힘든 할리우드 황금 라인업을 자랑했던 '듄'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 '아바타'에 비견될 위대한 SF 판타지를 선사하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세계관으로 안내한 작품이다.


'파트1'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나온 '듄'은 가문 간의 권력 다툼과 자원 및 환경문제, 식민지주의 등을 균형감 있게 잘 표현했다. 웃음이 나오거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지점 없이 진중하게 이어가는데, 지루할 틈을 못 느낄 정도로 흥미롭게 풀어나간 점이 눈길을 끌었다. 또 미지의 우주와 행성을 각기 다른 색채를 확실히 구분 지으며 신비로움을 안겼다. 특히 주무대가 되는 아라키스의 황량한 사막은 섬세한 음악이 더해지면서 피부로 직접 모래바람을 맞는 듯한 건조함을 느끼는 듯했다. 또 몽환적이고 영적인 기운을 내뿜는 미장센과 음악들은 우리를 '듄' 세계관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듄'의 주인공 폴 아트레이드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의 존재감을 만끽할 수 있다. 최근 쌓아온 필모그래피에서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던 그는 가냘픔과 불안감, 카리스마 등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며 '듄' 서사를 하드캐리했다.


★★★★


7위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리들리 스콧이 메가폰을 잡으면, 국내 관객들에게 다소 진입장벽이 높은 중세시대 배경 영화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현재 시대에 살아가는 관객들도 금세 빠져들게 만드는 서사와 시각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신작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가 그랬다.


극의 중심에 서 있는 세 인물 중 가장 나중에 나오는 마르그리트(조디 코머)의 시선이 '라스트 듀얼'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 여성을 남성의 전유물로 취급하던 14세기 프랑스에서 마르그리트는 그 시대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과 핍박에 시달려왔다. 그런데도 그는 굴하지 않고 주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치욕스러운 사건을 겪은 뒤 침묵 대신 자기 목소리를 내며 진실을 밝히려는 모습이 인상 깊다. 평소 여성 캐릭터를 매력 있게 부각한 리들리 스콧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탄탄한 스토리라인 위에 14세기 프랑스를 생생하게 재현한 고증력과 이를 바탕으로 구현한 피 튀기고 야만성 강한 거친 전투들도 현실감이 넘쳤다. 그중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장(맷 데이먼)과 자크(아담 드라이버)의 1대 1 결투와 이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는 마르그리트와 교차해서 담아내는 연출법은 진한 여운을 선사한다.


★★★★


6위 '미나리'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한반도 정반대로 날아온 한국 이민자들을 포함해 미국에 뿌리내리는 모든 이민자들의 표본이다. 낯선 환경에서 자신들과 다른 미국인들을 조금씩 경계하면서도 하루빨리 자리 잡아 미국 사회 일원이 되고픈 그들의 심경을 잔잔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폴(윌 패튼)을 비롯한 미국인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어이없어하면서도 폐기되는 수컷 병아리처럼 되지 않으려고 농장으로 성공하겠다는 제이콥(스티븐 연)의 열망, 불확실한 성공에 집착하는 제이콥에 점점 지쳐가는 와중에도 두 자녀와 남편, 엄마 순자(윤여정)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모니카(한예리)의 헌신. 이민 1.5세대 혹은 2세대를 대변하는 애니(노엘 케이트 조) 데이비드(앨런 킴) 남매, 건조해진 이 가족에게 한줄기 따스한 햇살 같은 할머니 순자. 어느 누구 하나 감정이입 안 되는 이가 없다. 미국 이민자들이 걸어온 길을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미나리'의 킬포인트.


비록 국내 관객들에겐 너무 익숙한 문화라 할지라도 순자가 싸온 한국음식에 울컥하는 모니카의 마음까지 결코 익숙지 않다. 아메리칸드림의 결과물이 모두 신통치 못해도 '원더풀 미나리'가 되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잔잔하게 건드린다.


★★★★


5위 '소울'


언제부턴가 픽사가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을 향한 기대치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세대 불문하는 가슴 뭉클한 작품들을 꺼내놓으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서다. 22번째 장편 영화인 '소울'도 이 기대치에 부합하는 퀄리티를 선보였다.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자아의식을 가지고 죽음에 다다르기까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소울'은 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음악을 삶의 목적이라고 외치는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 최종 목표를 하나둘 설정하고 불꽃을 태운다. 그러나 인생은 목적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그 자체임을 조와 22호(티나 페이)의 여정으로 풀어내는데, 픽사는 교훈적 메시지처럼 전달하기보단 몸으로 느끼게끔 서사를 구축했다. 이 점이 경이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소울'의 위력을 뼛속 깊이 실감할 때는 영화를 감상하기 전후 공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질 때다. 픽사는 과연 '어른동화 제조기'로 불릴만했고, 피트 닥터는 역시나 천재 스토리텔러다. 


★★★★


4위 '파워 오브 도그'


12년 만에 컴백한 제인 캠피온 감독이 표현한 서부극 '파워 오브 도그'는 목을 바짝 조여 오는 밧줄처럼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영화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게 꽉 붙잡아뒀다. 동시에 서부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시대 분위기에 억압된 인물의 모습을 담아내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몬태나의 카우보이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의 강압적이고 거친 남성성에 짓눌린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그의 가냘픈 아들 피트(코디 스밋 맥피)에 시선이 갔다. 그러나 점점 서사가 전개될수록 필의 숨은 이면으로 옮겨간다. 그러면서 과거라는 팽팽한 밧줄로 본모습을 봉인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씁쓸함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필과 비슷해 보였던 피트가 묶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향하는 과정과 대조되면서 더욱 극대화됐다.


'파워 오브 도그'는 베네딕트 컴배비치의 연기 내공에 감탄하게 만든다. 특별히 가하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압도하고 짓누르는 아우라와 쓸쓸한 이면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될 만한 존재감이었다.


★★★★


3위 '레 미제라블'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집필한 동명소설을 각색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레 미제라블'을 본다면, 왜 이 제목을 선택했는지 자연스레 공감하게 된다. 


1789년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던 사람들이 장악했던 프랑스 파리는 2005년에는 폭동의 중심지가 됐고, 13년 뒤에는 레블뢰 군단을 응원하고 프랑스의 2번째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는 장이었다. 그러나 현재, 18세기 말 자유를 부르짖으며 연대했던 모습을 잃어버렸다. 우리 안에서 위협했던 수사자들처럼, 서로를 향해 적대감만 내비친다. 그야말로 '비참한 사람들(Les Misérables)'이 되어버렸다. 이를 담아내는 카메라를 지켜보는 내내 버티기 힘들 만큼 울분이 가득 찼다.


'레 미제라블'은 파리 외곽에 위치한 몽페흐메이의 실상을 조명하며 고발하고 있으나, 이는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가 겪고 있다. 가진 것 없는 비주류는 언제나 외면당했고, 혐오의 대상이 됐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이웃을 향한 분노의 일갈만을 일삼는 현 태세를 꼬집고 있다.


★★★★☆


2위 '노매드랜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올해 아카데미상 3관왕에 빛나는 '노매드랜드' 또한 올해 대표하는 명작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이 최근 연출한 '이터널스'에 실망한 이들이라면, '노매드랜드'를 꼭 관람하길 권장한다.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노매드랜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네바다 주의 경제 붕괴 이후 밴을 타고 미국 서부를 여행하는 현대 유목민 펀(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이야기를 다뤘다. 타의로 노매드 신분이 된 펀과 노매드랜드서 만난 이들은 모든 게 무너져 정체성을 잃은 얼굴을 가졌다.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유랑하면서 찾아보려고 애쓰는데 처절함과 쓸쓸함이 느껴진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끼리 교류하고 연대하면서 위로하되 마냥 밝지만 않다. 휑하고 고독한 환경을 극복하는 건 각자의 몫이기 때문.

  

그래서 출발지로 되돌아온 펀의 뒷모습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어떠한 연출의 개입이나 각색 없이 오롯이 펀의 행보를 따라다니며 기록한 점이 진한 인상을 남겼다. 푹 패인 주름과 방황하는 눈을 가진 프란시스 맥도먼트의 모습, 그의 여정을 감싸는 잔잔한 영상과 배경음악은 조용하고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


1위 '그린 나이트'


아서왕만큼 영어권 문화에서 유명한 중세 영웅 서사시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이를 스크린으로 옮긴 '그린 나이트'는 오랫동안 내려온 이 전설을 기묘하고 독창적인 판타지로 재해석했다.


아서왕(숀 해리스) 대신 녹색 기사(랠프 아이네슨)가 제안한 목 베기 게임에 호기롭게 응한 가웨인(데브 파텔)이나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 녹색 기사와 재회하는 여정에서 그는 끝없는 시험대 속에서 점점 나약하고 후회하는 등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용비어천가' 같은 중세 신화를 비틀어 불완전한 영웅의 민낯을 끄집어낸 것이다. 데브 파텔이 연기하는 허약함은 더욱 극대화시킨다.


국내 관객들에겐 상대적으로 생소한 내용이다 보니, 중세 특유의 액션신 하나 없는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미장센과 표현들이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가웨인에 대한 배경지식, 인간적인 가웨인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그린 나이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판타지 덕후는 필수 코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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