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것 같아도 끝이 아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그냥 좀 덤덤하고 싶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은 차차 해도 되니까,
그동안 더할 나위 없이 수고한 나 자신을 격려해 주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들었다.
그래서 친한 후배들한테 먼저 요청했다.
“애들아, 언니 실직 기념 파티 하자. 내가 한턱 쏠게”
“파티요? 진짜 파티 해도 돼요?”
“질질 짜는 것 보다는 훨 낫잖아.”
실제 그랬다.
열심히 더 하고 싶었지만,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중도 탈락된 만큼 마음도 아팠고, 눈물도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들 그 마음을 붙들고 뭘 어쩌랴.
그러느니 나를 격려해주는 게 훨씬 생산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취업턱, 생일턱, 합격턱.. 이런 건 당연한데,
탈락턱, 실직턱, 불합격턱... 이런 건 왜 없냐 하는 거지.
결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과정 중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 과정에 대한 격려는 꼭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내건, 누가 위로의 차원에서 내건,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만 파티를 한다거나
턱을 낸다는 게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뒤집어 생각하면,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을...
취업이 돼서 “니나노~”를 외쳐도 그 뒤에는 어떤 고생길이 열릴지 모르는 거고,
지금 실패를 해도 다음에 어떤 더 좋은 기회의 문이 열릴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더라.
살아보니 그렇더라.
지금, 현재를 잘 살아야 하지만, 지금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
불운, 불행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게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때가 있다.
또 좋은 일이라고 여겨진 것들이 나중에는 나에게 그다지 좋은 게 아니었다는 걸 경험하게 되기도 하고..
그러니까 실패도, 탈락도, 불합격도 충분히 감사해야 할 만한 일이지 않을까.
물론 현실적으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더욱,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하지 않으면 작아질 것 같아서 공연히 호기롭게 제안한 파티.
용기를 잃고 싶지 않은 내가, 괜히 더 힘껏 내지르는... 일종의 기합이었다.
작년 겨울,
새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 친한 후배 경은이가 축하한다면서 선물해준 스와로브스키 볼펜.
아래는 실직 기념 파티 때, 이번에도 경은이가 사준 꽤 고급지고 맛있는 수제 사탕.
(쓴 인생 달콤하게 살란 뜻으로, 내 맘대로 해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