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학원 수업도, 날씨도 모두 좋았다. 컴퓨터로 재밌는 영상을 보면서 어제 마트에서 할인할 때 사온 장어덮밥을 저녁으로 먹으면 완벽한 하루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물게 기분이 좋았던 귀갓길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며 불을 켜려는데 반응이 없었다. 버튼을 왔다 갔다 매만져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전혀 예상 하지 못한 갑작스러움에 헛웃음이 났다. 가벼운 문제겠지, 아냐 아냐 큰 문제는 아닐 거야.
다행히 금방 문제를 찾았다. 전기 차단기가 내려가져 있었다. 곧바로 나는 차단기를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차단기는 버튼을 올리지 말라며 엄청난 힘으로 내 검지 손가락을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이때 직감했다. 아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갑자기 오늘 아침이 생각났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침에 씻을 때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방울씩 떨어져서 저러다가 그치겠지 했었는데 이젠 그 물이 우두두두 리드미컬하게 떨어지는 게 아닌가. 거기다가 화장실 조명 안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빨갛고도 시커만 물이.
이후의 일은 상세하게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무서운 걸 못 보는 내겐 공포영화 포스터와도 같다. 알게 된 점이 있다면, 집주인이 세입자와 함께 거주하지 않으면 세입자에게 급작스러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이 어렵다는 거다. 거기다가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에 집주인 대리역할을 하는 어떤 이가 끼여져 있으면 더욱 곤란하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2번 해야 하거나 소통 단계만 복잡해질 뿐이다. 거기다가 집주인이 치매 초기에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앞둔 노인이라면...
결과적으로 전기차단기를 올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누수를 잡아야 했다. 누수업체 왈, 화장실의 천장즉 우리 집의 윗집 바닥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윗집에 들어가 봐야 하는데 문이 잠겨져 있을뿐더러 집주인까지도 그 세입자와의 연락 방도를 몰랐다.
기어코 해가 졌다. 7월의 여름해라서 다행이었다. 나는 근처 제일 싼 모텔을 예약해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이틀 후 이사를 했다. 다시 부모님 집으로 말이다. 부모님은 오락가락하는 딸 덕에 이젠 경지가 승천하셨는지 두 분 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한 보따리 살림짐을 가지고 들어온 나를 어제도 내내 함께 살았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