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
자려고 밤마다 누워서 생각하는 게 있다. 그것이 첫사랑 따위라면 좋겠지만 사실은 네모반듯한 어금니의 형상이다. 한 달 전쯤인가 입안의 한 부분이 가볍게 흔들리는 느낌이 들어 살짝 잡아당겨보았더니 검지와 엄지 사이에 허옇게 씹다 만 껌 같은 게 딸려 나왔던 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미 부러진 채로 제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던 듯했다. 어안이 벙벙해서 한참 가만히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이 일을 겪을 때의 기분은 ‘어쩌라고’에 가까운 난감함이었다. 뿌리도 그대로 살아 있는 치아가 그대로 댕강 사라진 일도 믿을 수가 없었는데 거기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가장 빠른 방법이야 치과에 가보는 일이겠지만 발치를 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시간도 없었고. 그놈의 시간은 언제나 문제인데 하고자 하는 의지가 시간을 만드는 거라고는 하나 실은 말로 먹고사는 이 밥벌이 때문에 밥 못 먹고 말 못 하는 상황을 스스로 굳이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한 것이다.
부러진 이를 욕실 수납장 안에 살그머니 넣고 슬라이딩 도어를 닫아버렸다. 의외로 처음엔 가뿐했다. 그 자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비어주었어야 했는지 시원하다는 기분마저 들었던 게 의외였다. 음식을 씹는 일도 생각보다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빈 공간은 자주 느껴졌다. 혀로 입 안을 훑을 때마다, 마른 입술을 위아래로 비비다 침을 꿀꺽 삼킬 때마다 나는 마무리 의식 정도의 행동으로 비어버린 그 자리를 혀로 자꾸만 훑었다. 하지 말자 하면서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래도 잠깐이었다.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이 멱살을 움켜쥐고 일상으로 나를 다시 데려가면 곧 잊혔다. 그러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다시 그 일이 떠오르는 거였다.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인데.
사라진 어금니는 예전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이미 있어서 밀가루 반죽 같은 보철이 넓게 붙어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그렇게 쓸모없어진 줄도 몰랐던 거다. 그 병원에서 교정을 시도했었고, 별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던 다른 이도 뽑기까지 했지만 결국엔 모든 게 다 엉망인 채 허무맹랑한 시도가 되어버렸다. 그 일로 나는 병원이라고 하면 무언가를 뺏길까 봐 일단 두려운 마음부터 왈칵 든다.
과잉 진료니 누구의 소개 탓이니 하며 나쁜 마음도 먹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모든 선택을 내가 했던 건 그만큼 예쁜 외모에 대한 소망이 컸기 때문이었다. 나를 위해 내렸던 결정이 독이 되어 돌아왔던 순간을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가슴을 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물론 그 후로는 의료적인 처치를 받아야 할 때 엄청나게 꼼꼼한 검색을 해서 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나의 몸 한 구석이 실수 따위에 의해 소실되었다는 자책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러니까 선택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선택 뒤에 따라오는 결과들에는 기대감과 어쩌면 후회들까지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고심 끝에 어떤 결정을 했을 때 더 잘 될 거라는 순진한 생각만 한 적이 많다. 워낙 낙관론자이기 때문이고 목표한 일들만큼은 꼼꼼하게 살펴서 노력해서 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내가 열심히 하든 아니든 바깥에서 오는 원인으로 인해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나와 외부라는 두 개의 세계를 따로 인식하기가 너무나 어려워진다. 실패를 끊임없이 내게로 가져와 들이밀고 만다. '최종적으로 이건 너의 결정이었어.'하고 말이다.
이 순간 가장 떠오르는 한 사람도 있다. 교정을 결정했을 때 말렸던 친한 언니다. 언니가 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동안 나는 이미 그 말을 듣고 있지도 않았다. 마음의 절반 정도는 이미 치과에서 교정을 받겠다고 결정했고 나머지 절반은 예뻐질 미래에 퐁당 빠져 있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라는 그 말을 들었던 벤치로 다시 돌아가는 상상을 가끔 한다. 과거로 돌아가 내 결정이 달라졌다면 지금처럼 괴롭진 않았으려나. 또는 그때 교정을 못해 억울하다며 아직도 후회하고 있을지 알 수는 없다. 지나간 일은 우리가 세팅할 수 없으니.
대부분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 그러다가도 그 기억은 불특정 한 때에, 불특정 한 장소에서 훅 밀려들어온다. 거리를 걷다가 치과 간판을 의식하며 보기라도 한다면, 또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매력적으로 웃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그 이미지는 순식간에 나를 그때 그곳으로 데려가 다시 결정해보라고 씁쓸하게 재촉한다. 일 년쯤 잊고 있다가 갑자기 하루쯤 괴로웠다가 반복한다. 그 괴로움을 요즘은 밤마다, 아니 시시 때때로 낮에도 느끼고 있는 셈이다.
가장 괴롭게 느껴지는 점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못된 기억은 버려서 해소해야 마땅하겠지만 이 일은 내게 너무나 생생히 살아 있다. 눈에 띄지도 않았으면 좋겠건만 매일매일 쓰고 닦는 일부분은 복잡하게 얽혀 풀릴 기미가 없다.
이 미운 녀석들을 잘 씹어 소화시킬 방법은 없을까. 매일매일 양치를 하며 묻는다. 억지로 입을 벌려 빠진 이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은근슬쩍 확인하며 내일은 꼭 치과에 전화를 해 봐야지 다짐한다. 하지만 치과에 고작 전화하는 일로는 안 된다는 것쯤도 안다. 더 아파질까 봐, 생각지도 못한 더 큰 통증이 있을까 봐 무섭기도 하다. 그것은 내게 조금 슬픈 일이다.
잠이 오지 않아 결국 클릭한 영상에서 한 국민 연예인이 게스트와 대화하는 게 귀에 쏙 들어온다. “부모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고, 저도 어쩌다 보니 그냥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만.” 화면을 쳐다보니 게스트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그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그의 미소는 자연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해 보였다.
‘감춘다고 지워질 일은 아닌 걸 안다.’
‘남들이 아무렇지 않다고 말해봤자 내가 나를 인정해야 한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그 부분, 나라도 아껴줘야 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한테 별로 관심 없다.'
효과가 사라지기 전 서둘러 주문을 외우듯 작게 속삭여 봤다.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용기가 난 김에 좀 더 크게 말해보았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아."
"그럼."
"받아들여."
"뭘?"
"널."
대화할 이도 없이 혼자만의 좋은 말 릴레이가 서너 번 오가고 나니 나 뭐 하고 있나 싶어 푸풉! 웃음이 난다.
애써 맘을 고쳐 먹는다. 그래, 그랬지. 자신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은 멀고도 이토록 단순한 일이었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