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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Oct 22. 2022

당신의 서재

서재 결혼시키기

와세다 대학에 가면 하루키 라이브러리가 있댔다.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다. 하루키라는 작가를 애정 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루키가 살던 시대를 같이 살았다는 점에서.      


그곳 거대한 서재에 가게 되면 하루키라는 사람의 정체를 좀 더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하루키와 나 사이에 접점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아주 먼 하늘에 있는 별과 같은 접점이라고 한들 대수겠는가.      



서재라는 공간은 한 개인의 취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다. 옷장만큼이나 사적인 공간이다. 중구난방 잡다한 목록 속에서 나와 같은 취향의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그와 나의 접점이 된다.      


당신의 서재에는 무엇이 꽂혀 있는가.


당신은 한때 전공서적을 샀던 사람이다. 또한 취업 문제집을 샀던 사람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책, 또는 화법 책을 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활을 위해 사는 책들 외에 당신의 서재에는 어떤 책들이 있을까.


이 말은 나는 당신이 궁금하다는 뜻이다.      


수없는 책들이 탄생하고 당신에게 도착해도 결국 남는 책은 몇 권일 것이다.


하루키는 최종적으로 자신의 서재에 51권의 책만을 남겼다고 했다. 당신에게 남는 책은 베스트셀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은 전혀 모르는 희귀한 생물도감일 수도 있다.      


‘서재 결혼시키기’라는 책이 있었다. 하루키의 서재를 찾다가 정말 갑작스럽게 그 책이 떠오른 것이다. 인간의 무의식이란 정말 놀랍다. 책 덕후들의 심리를 정말 자극하는 제목이었다.


작가가 결혼을 한 후에도 5년 이상 각자의 서재를 유지하다가, 결국 서재를 합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책이다.      


하지만 제목만큼 재밌진 않다. 일단 그 책에 나온 작가들을 잘 모르고, 뒷부분의 에피소드들은 맞춤법과 띠지에 대한 게 나와있을 정도로 책에 집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으로서는 도무지 이 정도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우리 집 구 씨라 부르는 남편 (물론 손석구의 ‘구’다. 또한 나의 해방 일지의 ‘구’다.)과 처음 결혼했을 때 나도 서재 결혼시키기 비슷한 행동을 했다.


당연히 내게는 책이 많았다. 그리고 그 책 한 권 한 권에는 모든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어느 하나 소홀할 책이 없었다는 뜻이다.      


남편의 서재에는 무슨 책들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몇 권의 토익 책, 전자공학 서적, 기타 등등.


기억나는 건 ‘별의 계승자’라는 소설과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이다. 심지어 sf 소설이라는 ‘별의 계승자’는 두 가지 버전으로 갖고 있었다.      

나는 서재의 공간 확보를 위해 그 두 권 중 한 권을 몰래 처분하려고 준비했다. 하지만 결국 들켰다. 생각보다 우리 집 구 씨는 헐헐한 인간이 아니었다.


나더러 구 씨는 그 책이 대체 어떤 책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한 시간 정도 그 책에 대해 강의 비슷한 설교를 들었다. sf 소설의 계보를 운운하는 그 앞에서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은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 책을 버려서는 안되는 건 확실히 알았다.      


그 책은 지금도 책장에 꽂혀 있지만, 나는 남편이 그 책을 한 번도 펼치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물론 이 세상에는 책장에 꽂아두는 일만으로도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책들이 있다.


그 책도 우리 집 구 씨에게는 자신이 한 때 좋아했던 일들에 대한 증명. 그런 의미인 것이다.      


한때 가지고 있었던 책을 거의 모두 처분한 적이 있었다. 우습게도 몇 년이 지나 보니 나는 그 책들이 다시 필요했다. 참고서적으로 야금야금 다시 한 권씩을 사고 있다.


앞으로 글을 안 쓴다는 마음을 먹을 때는 짐덩이 같았는데, 이제 돌이켜보니 그 책들이 내게 우연히 오지 않았다. 살다가 문득 그 책에 나온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는 걸 보면 그렇다.      


샀다가, 또 처분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내 서재에 남아 있는 새로운 책들도 있다. 종국엔 나도 하루키처럼 최종적으로 50여 권의 책만을 계속해서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주 오랜 후까지 나와 함께 같이 갈 책은 무엇인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해진다.     



덧. '서재 결혼시키기'의 행방이 궁금해서 그 책을 다시 찾았다. 다행히 아직 절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새 책으로 구입할 생각은 아니다.  잃었던 시간만큼을 채워서 곁에 두고 싶다.

-22102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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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어요.


 @tae.i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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