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태이 Jun 26. 2022

합평 시간

글쓰기 동료들

      

우연한 기회에 ‘합평 모임’이라는 데에 참여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작가님의 조언에 따라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평소였다면 낯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합평을 받는 일에 자신이 없어 포기했을 텐데, 그 당시에는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이 이전보다 강해졌던 것 같다. 매번 곯아 박는 글을 쓰면서도 포기가 되지 않아서 초조했다. 혼자 쓰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읽는 사람이 없이는 쓴 글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모임을 어떻게 운영할까요?”

“제가 구글 드라이브를 만들게요.”

“줌 계정 있으실까요?”

“글 마감은 언제로 정할까요?”

“효율적인 모임을 위해 4분 이상 동의하시면 진행하는 걸로 하면 어떨까요?”

“글감은 돌아가며 정하는 게 좋겠죠?”      


자발적인 합평 모임에서는 주제도 자발적으로 정했고, 글 제출 기한도 자발적으로, 그 외에 피드백이나 벌칙들도 자율적으로 정해졌다.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기관이 없이도 평화로울 수 있구나 감동했다. 그래도 모임을 적극적으로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임에 마음을 주고 시간을 투자해서 다른 이들을 편안하게 따라오도록 돕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또한 글에 대해 진지하게 애정을 갖고 써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2주에 한 번 온라인으로 만나는 우리의 합평 시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찰지고 진지해져 간다. 합평에 참여하는 온라인 친구들은 나이도 다르고, 사는 지역도 다르고, 당연하게 직업이나 처지도 다르다. 하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자기 글이 이상할까 봐 신경쓸 수는 있다. 글 제출 마감이 들어 있는 금요일 밤에는 다들 소리 없이 조용하다. 자정을 넘기기 전에 어떻게든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제출하기 위해 집중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글을 좋아하는지 생각만으로 알 수는 없었다.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생각만으로 잘 쓴 글도 없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처음의 메모 조각들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도 했다.

마감 시간이 지나면 침이 가득 고이는 초콜릿을 몰래 서랍에 저장하듯이 파일을 다운로드한다. 주말에는 글쓰기 동료들이 쓴 글을 하나씩 까먹으며 충만한 기분에 젖는다. 글들은 때로 슬프고, 때로 아름답고, 때로 웃기다.  모임의 합평에 참여하는 온라인 친구들이 2주 간 최선을 다해 써온 글을 우리는 읽는다.     


우리는 서로의 생활에 대해 모른다. 거기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글로 만나 글만 얘기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글을 읽으며 안다. 그이는 그 책을 읽으며 엄마를 생각했겠구나. 글을 제대로 마무리 못한 그이는 현실에 치여 시간을 보냈구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피곤한 몸으로 돌아왔음에도, 다시 책상에 앉아 밤에 스탠드를 켜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고치고 더듬는 그 행위를 했을 걸 안다. 그래서 우리는 글만 얘기한다. 글에 대한 얘기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예의와 애정은 전달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재밌는 건 우리가 배우는 게 서로의 글쓰기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서로의 합평도 배운다. 합평이란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거라는 정도의 정의만 알고 있었더라도 좋은 합평을 받으면 알게 된다. 이렇게 글을 바라보는 거구나! 그리고 그만큼 나도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맘이 솟아오른다. 글이 이상하면 이상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왜 그렇게 느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글을 몇 번이고 다시 꼼꼼하게 읽는다. 합평을 위해서는 서로의 글을 애정 없이 읽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뭉클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글로 알게 된 사람들은 몇 년을 직장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를 매일 둘러싸고 있는 밥이나 사는 동네, 인간적인 관계를 떠나 나는 그들 앞에 글로만 서 있다. 두 쪽짜리 글 안에는 아무리 다듬어도 피할 수 없는 내 못난 과거가, 불확실한 결론들이 문장의 형태로 변신하여 둥둥 떠다닌다. ‘정말’을 '정말' 많이 쓰는 관습처럼, 써보지 않고는 나에 대해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이런 점들은 반드시 겪어보고 깨져야만 수정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써야 했다.      


이 동료들은 잘 쓰는지 확인받으러 오는 게 아니라 깨지며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애써 썼지만 마감 기한이 없었다면 절대 제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블로그에 공개해봤자 비공개로 돌렸을지 모른다. 글을 쓰며 고려해야 할 사항 백 가지 중 그나마 한 가지쯤 자신이 있어서다.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때문에 합평을 받는 주인공이 될 때는 저절로 볼이 살그머니 붉어지며 수줍게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칭찬을 받을 때나,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을 들을 때나 상관없이 마찬가지로. 누가 부족한 점을 얘기하면 ‘너는 얼마나 잘 쓰나 보자.’하며 이를 가는 대신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물론 부족한 말도 합평 동료들은 포근한 말로 돌려 표현해 주지만, 아무리 좋은 말을 듣더라도 이 예리한 독자들 앞에서는 자기가 부족했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이것밖에 못 쓰나 싶은 자괴감, 무엇보다 생각이 상투적인 나 자신에 대한 반성. 이걸 견디고 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노력은 감추려 해도 고스란히 글 속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내일 당장은 아니라도 어느 날에는 문득 그렇게 된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쓰면서 나의 불확실성에 대해 알아가는 만큼 누가 읽는다고 생각하고 쓴 글은 나를 위한 글에서 벗어나게 만들기도 한다. 나만의 치료제로서의 글로 남지 않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무엇으로든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합평 모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 부분을 빈틈없이 단단한 생각들로 쌓아 나가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다. 지금 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되기 위해 열망하는 사람들이 여기 모여 글을 쓴다. 다른 이가 아닌 자기 자신을 다듬으면서.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면서.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나는 확실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글쓰기에 대한 사랑이 흘러 흘러 동료를 만들고, 동료들이 쓴 글을 사랑하게 만든다. 달콤하고도 몹시 떨리는 사랑이다.       





22.06.19. 박태이    



* "글쓰기와 사랑"을 주제로 브런치 매거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란 읽어주는 사람 없이는 무용한 행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글쓰기가 주는 치유의 힘을 믿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미워할 때조차 글을 쓰면서 자신을 용서하게 될 때가 있으니까요.  

혼자 쓸 때도 물론 그렇지만, 함께 쓸 때 더욱 그러하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서로의 글을 읽는 합평 시간에 개개의 글은 소중한 그 무엇이 되어 모두를 온전히 감쌌다가 다시 우리를 원래의 공간으로 돌려 보내 줍니다. 

그러므로 글쓰기에 대한 사랑, 살아가는 날들에 나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생활 속에서 느낀 점을 책 속 한 문장과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놀러오세요. 
 -박태이- @tae.i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