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태이 Aug 14. 2022

우리가 비틀거리면서도 앞으로 걷는 이유

금요일 밤, 여자 셋은 와인바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불현듯 왜 와인이었을까. 일상에 지쳐서 당도가 있는 술이 먹고 싶었다고도 치자. 여름 내내 차가운 맥주만 마시다 보니 열이 오르는 술이 필요했다고도 치자.


이유야 뭐가 되었든지 여자 셋, 금요일 밤, 와인바, 예약 완료.  




검색해서 찾아간 곳은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빈티지한 와인바였다. 작은 실내 구석에 가죽소파가 있었고, LP판에서 옛 가수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모든 오래된 것들을 친숙하게 여기진 않는다. 하지만 친숙하게 남은 것들은 어쩔 수 없이 함께 낡아간다. 그런데 LP판 속 목소리는 하나도 낡지 않았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이제 세상에 없었다.




각자가 먹어본 적이 있는 와인을 제외했다. 무난하고 평은 품종이라는 캐빗 컬렉션 피노누아를 골랐다. 안주는 레드 와인에 어울릴 법한 샤퀴 테리. 사진을 찍었다.  

"먹어볼까."

와인은 혀에 슬쩍 묻는 듯하더니 뒷맛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사라졌다.


와인을 샀지만 실은 분위기를 산 셈이다. 사람들 사이에 은근하고 나른하게 머무르고 싶을 때는 와인이 제격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된다."

"맞아, 맞아."

"그래?"

신변 잡다한 얘기보다 리액션의 종류를 따지는 게 훨씬 유쾌했다.  신나게 대꾸하면서 잔을 비웠다.


와인이 한 모금씩 들어가자 다들 표정이 풀어지고 상냥하게 웃기 시작했다. 마법 같은 순간이다.

심각한 일도, 화나는 일도, 배실배실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술을 마시는 동안 웃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원래 항상 그렇게 사는 것 같기만 하다.     


“빨리, 이제 각자 힘든 일 말해 봐.”


여자들의 술자리에서 ‘힘든 일’은 같은 편이라는 동질감을 형성하는 요소다. 다 같이 말하고, 다 같이 듣고 다 같이 마구잡이로 욕하고 나면 해소되지 않은 에피소드들은 들을 이 없는 공기 중으로 흘러나간다.

지구 상에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게 왠지 특별한 위로가 된다.


한참 떠들다 정작 너는 뭐 없냐고 물었을 때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내 고민은 털고 지나가는 종류라기보단 생활의 일부들이다.

어쩌다 나는 더 이상 상처 주는 사람들과는 만나지 않는다. 제멋대로 해버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걔는 선을 넘었다. 그 오빠랑은 지쳤다. 엄마는 한결같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변함이 없고, 문제도 변함이 없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게 결국 나라면 , 우리가 변하는 거밖에는 방법이 없는 질긴 관계들도 나 자신이 되는 게 싫다.



그중 한 친구는 지속되는 ‘싸움'에 대해 얘기했다. 그녀는 23살 때부터 6년 간 한 사람과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나는 오랜 연애를 하고 결혼한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존경심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긴 시간 동안 항상 열렬하게 사랑할 수만은 없었을 텐데 그 구렁이 같은 터널들을 어떻게 헤쳐 나왔던 거지. 아무리 말해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은 알 수 없다. 그 지난한 과정을 아는 것도 실은 그 둘밖에 없다.

때로는 다 토하듯 말해버리고 싶어도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꾹꾹 눌러온 감정은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지는가 보다.      


입은 웃으면서 연신 눈가를 닦던 그 친구는 "답답해."라고 말하다 종국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취했네." 곁에 있던 다른 친구가 그 친구를 한참 쓰다듬고 토닥였다.

나는 누가 나를 만지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취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거기에 의지해 한참을 울다가 무릎을 베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 아기처럼 웅크린 자세로 잠이 들었다.


그녀를 나는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떤 한 사람에게 완전히 몸을 맡기고 있는 그 모습을.


우리의 힘듦은 잠시나마 어딘가에 몸을 의탁하고 싶다는 외로움에서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정 무렵까지 LP판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대다가 가게를 나왔다. 친구를 데려다주고 내친김에 조금 걸었다.


예전에 취했을 땐 보통 누군가가 보고 싶었다. 그날은 타박타박 걸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떠올리려 해도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운 감정이 없다는 게 허전하면서도 이상하게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대신 친구가 했던 질문이 하나 툭하니 떠올랐다.

울었다는 그 친구가 와인바 가는 길에 탔던 택시 안에서 이렇게 물었다.

“넌 왜 이렇게 카톡을 안 봐?”

금요일 밤의 도로를 꽉 메운 차들에 시선을 주며 잠시 머뭇거리자 다시 손가락으로 내 핸드폰을 가리켰다.  

“봐, 지금도 폰 안 보잖아.”

그러게. 왜 카톡을 빨리 보지 않을까. 나도 궁금했는데 이 밤이 되어서야 답을 찾았다.



하루 종일 여러 순간들이 나를 통과해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몇 가지 장면만을 고이 오려 마음 안에 붙여두었다. 울던 친구, 끄덕이던 얼굴들, 등을 쓰다듬던 작은 손이었다. 그건 내가 선택한 나의 장면들이 되었으니 친구에겐 다음번에 말할 수 있을 거다.

봐, 세상에 볼 게 이렇게 많잖아, 지금도.”


가로등에 의지해 지지부진하게 걸었다. 길이 구불구불한지 내가 비틀거리는지 자꾸 분간해야 했지만 지금이 좋다고, 지극히 좋다고 생각이 들던 밤이었다. 이 모든 게 금요일 밤, 여자 셋, 와인바 덕분이었다.


22. 08. 13.(토) 박태이





언제든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만의 시선을 가진다고 합니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우리는 다른 걸 쓰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글쓰기란 쓰는 사람을 보여주는 행위 그 자체인 듯도 하네요.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당신을 지지하는 이 세계의 글귀들
@tae. i22






이전 05화 사랑이라는 이름의 사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