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꼬맹이를 소개합니다
12. 당신의 글쓰기는 어디로부터 왔나요?
자고 있던 박태이는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은 답답함을 느끼고 잠에서 깬다.
헉, 헉, 뭐야. 무슨 일이지. 왜 이래.
자신의 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언가가 박태이를 짓누르고 있다.
어둠 속에서 누운 채로 어렴풋이 정신을 차린 박태이는 야리꼬리한 냄새 덕분에 답답함의 원인을 알아차린다. 곁에서 자던 딸이 360도로 뒹굴다가 박태이의 가슴에 두 발을 척척 올려놓은 탓이다.
에라이.
박태이는 5살 난 딸(이하 꽃꼬맹)의 다리를 두 손으로 잡고 휙 옆으로 치운다.
꽃꼬맹은 잠시 뒤척인다. 깨진 않겠지. 걱정도 잠시. 이내 꽃꼬맹은 다리를 쩍 벌리고 만세를 한 채 새근새근 잔다.
박태이는 잠이 깨어버린 탓에 핸드폰 불빛을 켜서 가만히 자고 있는 딸의 얼굴을 본다.
애는 가끔 신기한 자세로 잠을 잔다.
가끔은 얼굴에 꽃받침을 한 채로 잠이 든다. (그래서 꽃꼬맹이다.)
대부분은 한쪽 다리를 기역 자로 만든 채 달리는 자세를 취한 채로 잔다. 그것은 박태이의 자는 모습과 똑같은 자세다. 그 자세는 박태이의 아버지의 것이기도 하다.
유전이란 신기한 것일세 ...
박태이는 꽃꼬맹의 자는 모습을 보며 혀를 쯧쯧 찬다. "정신이 없었어요, 정신이." 하며 박태이의 말을 똑같이 복제하던 오늘 낮의 꽃꼬맹이도 떠올린다.
유전자란 아무래도 박태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종류의 프로그래밍이다. 정말 닮고 싶다거나 정말 닮기 싫다고 한들 방법이 없다. 그런 날의 박태이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의 대책 없는 따스함과 자신을 낳아준 아빠의 무한 긍정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우습게도 대부분의 좋은 날은 나의 몫이었다. 나의 노력, 나의 운.
유전을 탓하게 되는 날은 보통 좋은 날보다 안 좋은 날들이다. 해결 못할 문제들.
엄마와 아빠의 싫어하는 면을 어쩌면 닮았을지 모를 박태이. 어떤 날 그 싫어하는 면이 불현듯 자신에게서 튀어나올까 봐 불안한 박태이. 거기로부터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하는 박태이. 박태이의 머릿속에는 세 글자가 떠오른다.
에라이....
사람이 아기를 낳는다는 건 뭘까...
불완전한 인간은 왜 불완전한 인간을 또 창조하기로 결심하는 것일까...
그 모든 불 완성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항상 더 나은 결과를 믿는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동시에 인간은 혼자 완전히 설 수 있을 때까지 기댈 곳을 찾는 것 역시 신기한 일이다.
건넛집 4살짜리 아가는 아직도 엄마의 쭈쭈를 만지고 잔다고 들었다. 그런 날 그 집 엄마는 자기가 자기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자기 몸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박태이네 집 아가들도 어쩔 수 없이 밤마다 박태이를 찾아와 비비적거린다. 손을 만지작거리고 뽀뽀를 한다. 또한 그들은 모여서 쓸데없는 화제로 티격 대기도 한다.
“엄마는 내 꺼거든!”
“아니야, 엄마는 내 꺼거든!”
듣고 있던 우리 집 구 씨까지 끼어든다.
듣고 있던 박태이는 한숨을 푹 내쉬고 외친다.
“다 틀렸어! 엄마는...."
그들은 휙 엄마를 돌아본다.
"엄마는 엄마 꺼거든!”
몇 년을 말했지만 자꾸 까먹는 그들 앞에서도 박태이는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다.
아무리 깊은 사랑에 빠진 날에도 ‘박태이는 박태이 꺼’였다. ‘자기는 내꼬. 나는 자기꼬.’ 이런 대사는 빈말로라도 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이 아닌 나머지 인생을 무슨 수로 알겠냐.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열심히 살 수 있었다는 박태이의 마음을 그들은 알 바가 없다.
책을 읽다 말고 잠이 쏟아지는 박태이는 비몽사몽 혀가 꼬인 채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듣는 사람도 없이 말한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이불을 돌돌 말고 다리를 기역 자로 척 올린 박태이에게선 이내 규칙적인 숨소리가 난다.
하지만 자다 문득 새벽에 눈을 뜨고 꽃꼬맹이 자는 모습을 살펴보며 이불을 덮어준 뒤 뽀뽀를 하고 손을 잡는 건 결국 박태이 자신임을 그녀도 알고 있다.
자고 있는 이 순간에도.
-221016.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