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저주에서 빠져나오기, 제4원칙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처음으로 청약 통장을 만드는 고객을 상담하고 있다.
고객: 청약 통장은 어떻게 사용하는 거예요?
직원: 무주택 세대주이면 국민주택 청약이 가능하시고, 유주택이시거나 세대원이실 경우에는 민영주택 청약이 가능하신데, 원하시는 지역마다 예치금이 달라요.
고객: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며) 죄송한데요, 뭐라고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국민주택? 민영주택? 예치금? 그게 다 뭐죠?
고객의 문의에 답을 하거나 고객에게 제품을 소개하는 순간은 고객을 내편으로 만들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는 결정적 순간이다. 이 순간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당신이 사용하는 대화 방법은 무엇인가?
고객 상담 장면을 관찰해 보면 많은 경우 이 사례와 같이 대화가 이루어진다. 제품이 잘 작동하지 않아서 고객서비스센터에 문의를 하면 상담 직원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는 때가 많다. 직원은 고객이 이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설명을 한다. 여러 고객에게 같은 설명을 반복하다 보니 말투에 짜증이 배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상담을 잘하는 직원을 관찰해 보면 대화 방법이 다르다. 그들은 고객의 눈높이에서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고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적인 용어를 남발하여 고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 않는다. 설사 전문용어를 사용하더라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을 해준다. 또한 단계별로 설명을 하고 중간에 이해 여부를 확인한다.
이 사례의 직원도 처음 창구에서 상담을 할 때는 자신 역시 그 용어들을 잘 몰랐기 때문에 공부를 하고, 고객들에게도 자세히 설명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용어들에 익숙해지면서 고객들은 이 용어를 잘 모른다는 것을 그만 잊고 말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객을 대할 때 ‘고객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일까?’를 묻는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은행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한창 바쁠 때 고객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았다. 인터넷 뱅킹을 하는데 잘 안된다는 것이다. 그 직원은 속으로 ‘천천히 살펴보면 쉬운데..’라는 생각을 했고,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안내를 했다. 통화 후 옆에서 이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팀장이 다가와 조용히 말을 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용하는 인터넷뱅킹이지만 처음 이용해 보는 고객이라면 충분히 어려울 수도 있을 거야. 한번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 이후로 그 직원은 어떠한 상황에도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업무를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훨씬 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 쉬웠고, 자연스럽게 고객을 친절하게 대할 수 있었다.
역지사지는 이렇게 개인 간의 대화에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서 고객과의 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고객과 소통을 하는데 고객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고객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고객과의 소통에서 역지사지로 지식의 저주를 없애기 위해 두 가지 측면에서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을 하고, 둘째는 고객이 진짜 듣고 싶은 것을 파악하여 말하는 것이다.
60대 부부가 의류 매장에 갔다. 남편은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고 탈의실에서 그 옷을 입고 나왔다.
“어떤지 한번 봐주세요.”
매장 직원에게 묻는다.
“고객님에게 아주 잘 어울려요. 그 옷은 저기 ‘디피’ 되어 있는 것과 같은 거예요.”
부부는 ‘디피’라는 말을 처음 들어봐서 ‘디피’가 무슨 뜻이에요 묻자 직원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을 지으며 “디피는 디스플레이(display 줄여서 dp 디피라고 함)라는 말이에요. 앞에 진열된 거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은 기분이 영 나빴다. 직원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고객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패션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디피’라는 표현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고객을 대할 때 지식의 저주를 피하려면 당신이 속한 업계의 언어를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이 언어를 고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꾸어 사용해야 한다.
고객과 소통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객이 진짜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선호하는 언어는 계층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특히 경영자들은 재무적인 언어를 더 좋아한다. 이것으로 인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 이런 경향을 빗대어 경영의 언어로 이야기하라고 충고한다.
IT회사에 다니는 P부장은 지식의 저주 때문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놓쳤던 경험이 있다. 한 보험사에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 관계 관리: 고객을 정확히 이해하여 이들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여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활동) 솔루션을 제안했다. 제안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 솔루션은 세계 최고의 CRM솔루션입니다. 세계적인 보험 회사들도 이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설명은 현란한 기술 용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발표 후 P부장은 자신의 발표가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 이유는 경영자들이 원하는 언어를 쓰지 않고 실무자들이 원하는 언어를 썼기 때문이다. 당신이 큰돈이 들어가는 제품을 살지 말지 결정을 해야 한다면 그 제품의 어떤 면에 가장 관심이 있겠는가? ‘이 제품을 사용하면 재무적으로 얼마나 이익이 될까?’ 일 것이다. P부장은 “만일 다시 그 고객에게 설명할 기회가 있다면 이 제품으로 연간 200억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고객과의 대면 순간에 고객을 얻을 것인가, 잃을 것인가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가에 달려 있다. 상대의 관심사를 등한시하고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만을 말하는 것 역시 지식의 저주에 빠진 화법이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해하고 그 고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말하라. 이것이 고객을 얻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