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저주에서 빠져나오기, 제5원칙
서울 왕십리역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데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녀는 복잡한 지하철역에서 몹시 급한 듯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여기서 한양대 병원 어떻게 가요?”라고 물었다.
당신이 그 주위에 있었다면 어떻게 그녀를 도와주었겠는가?
역 안내도에서 한양대 병원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아 빨리 알려주었겠는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행동을 했을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 방식으로 반응을 한다. 왕십리역 근처에 한양대 병원이 있기 때문에 그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지하철역을 나가서 버스를 타면 금방 간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다른 식으로 반응했다. 그 사람은 그녀에게 다가가 “어디를 가시죠?”라고 확인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구리 한양대 병원에 가요. 응급실에 빨리 가야 돼요” 그는 경기도 구리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타도록 안내해 주었다. 만일 그가 다시 한번 묻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한양대 병원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모두 왕십리역 근처의 서울 한양대 병원이라고만 가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가 어떤 말을 하면 재빨리 그 말의 의도에 대해 섣불리 판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 판단이 맞다고 믿기 때문에 상대에게 확인을 하지 않는다. 섣부른 판단의 결과 종종 헛다리를 짚는다.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습관은 타인의 말을 해석할 때도 나타난다. 그 사람 입장에서 그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가, 의도가 무엇인가를 알아보려 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해석하고 결론을 내려버린다. 그래서 오해도 많고 탈도 많다.
상대의 의도를 내 마음대로 상상하여 잘못된 해석을 하는 것 역시 지식의 저주라 할 수 있다. 잘못된 해석을 토대로 소통을 한다면 그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막는 방법은 바로 질문이다. 상대가 모호한 말을 할 때는 그 뜻을 당신 마음대로 상상하지 말고 상대에게 물어서 확인을 한다. 그리고 상대의 말이 어려워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물어서 본질을 이해한다.
구체적으로 이 질문이 큰 도움이 된다.
"잠깐만요,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는 시멘트 회사에서 부장들을 대상으로 한 과정에 학습 코치로 참여한 적이 있다. 팀들은 “그룹에서 사용하는 F/A의 시너지 확대 방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의를 했다. 참가자들은 나도 당연히 ‘F/A’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 것으로 보는 듯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F/A 가 공장자동화(Factory Automation, FA)라고 생각을 했지만 잠시 후 내 마음대로 상상하는 대신 질문으로 확인을 했다.
“잠깐만요, F/A가 무슨 뜻입니까?”
질문을 통해서 F/A가 ‘플라이 애쉬(Fly-Ash)’이며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부산물로 발생되는 매우 미세한 분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화 시 상대방이 사용한 용어의 의미를 모르지만 그 용어의 의미를 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한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는데도 묻지 않는다. 물어봤다가는 ‘눈치가 없다고 낙인찍힐까 봐’, ‘모른다고 하면 바보같이 보일까 봐’라는 생각이 이런 행동을 부추긴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상대방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으흠, 으흠!’ 반응을 한 적은 없는가? 나도 수업시간에 교수가 말하는 내용을 잘 모르면서도 이런 행동을 할 때가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자,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일부러 어려운 용어를 쓰고, 일부러 두리뭉실하게 말했을까? 이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들 자신에게 익숙한 용어이고 내용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가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전까지 진실된 대화는 어렵다. 이해되지 않는 말이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용기를 내어 이렇게 묻는다.
‘잠깐만요,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미안합니다, 설명을 잠시 놓친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겸손하게 질문을 한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대화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다. 묻는 것은 결례가 되지 않는다. 묻지 않고 잘못 행동하면 더 큰 손해를 입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런 질문을 당당히 던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만일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현상인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가 퍼져 있다면 편하게 질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했는데 그에게 ‘이것도 모르나.’는 식의 반응을 하면 그곳은 칠링 이펙트로 휩싸인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상대를 이해시키지 못한 당신의 책임이 더 크다. 누가 질문을 해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특히 요즘과 같이 변화의 속도가 빠른 변덕스러운 세상에서는 ‘모른다’ 다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정작 부끄러워할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물어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