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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복 Nov 04. 2019

‘부모님’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한다

지식의 저주에서 빠져나오기, 제7원칙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아들은 최근에 학교를 졸업하고 A사에 취업을 했다.  

“아들아! 내 친구들에게 네가 취업했다고 하니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던데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니?”

“유전체 분석팀에 있어요.”

“유전체 분석팀에서 어떤 일을 하는데?”

“……” 

이 순간 아들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먼저 지식의 저주에 빠진 아들의 대답을 보자.  

“DNA 시퀀싱(sequencing) 담당이에요. 그것은 DNA 가닥에 있는 네 가지 염기인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과 티민의 순서를 결정하는 데 …(계속 전문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뭐 그렇게 어려워.”

‘친구들이 물어보면 그냥 A사에 다닌다고 하세요.” 


아쉽게도 이 아들은 지식의 저주라는 소통 장애물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는 회사에서 늘 쓰던 용어로 답한다. 아버지는 실망스러운 얼굴을 하며 더 이상 말이 없다. 

 

만일 아들이 지식의 저주에 대해 알았다면 아버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유전자가 다르잖아요. 만일 아버지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어떤 병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지 안다면 어떤 점이 좋겠어요?”

“미리 그 병을 예방하기 위해 뭔가 조치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나한테 맞는 약을 만들 수도 있겠고.”

“네, 제가 하는 일이 바로 개인의 유전자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연구하는 거예요.” 

이 대화로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아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자랑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의 고수와 하수를 구분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고수는 연세가 드신 부모님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말한다. 반면에 하수는 어려운 내용을 더욱 어렵게 말한다.  


쉽게 말한다는 것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한 가지 간단한 기준을 제안하고 싶다.  


‘당신의 부모님도 이해할 수 있는가?’ 




나는 자료를 만들거나 글을 쓸 때마다 박사 과정에서 만났던 통계학 교수의 말을 떠올린다. 통계학이라고 하면 흔히 연상되는 단어들이 있다. ‘복잡하다, 어렵다, 골치 아프다.’  그런데 그 교수는 통계학에 대한 나의 이런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통계학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설명해 준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가 수업 시간에 통계분석 결과를 해석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했던 질문이다. 


“당신의 어머니가 그 결과 해석을 들으시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학생들은 이 질문을 ‘엄마 질문’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처음 이 질문을 받을 때 몹시 당황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어렵고 전문적인 용어를 써서 표현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통계분석 결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라 통계 용어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교수는 매번 엄마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말을 사용해서 결과를 다시 해석하라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학생들은 점차 통계분석 결과를 해석할 때 과연 우리 엄마가 이해하실 수 있을까? 이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다시 살피게 되었다.  


나 역시 강의를 하면서 이 질문을 애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 뜻하지 않은 반응을 받았다. 한 회사에서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지식의 저주’에 대해 강의하면서 어려운 말로 설명하는 참가자에게 평소처럼 “엄마도 이해하실 수 있는 말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랬더니 휴식시간에 한 여성 참가자가 찾아와 “박사님, 요즈음엔 엄마들도 굉장히 똑똑해요.”라고 말했다.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것 역시 내 입장에서만 말한 지식의 저주임을 깨달았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부모님도 이해하실 수 있는 말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로 바꾸었다.    


물론 부모님도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이 말은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말하라는 의미이다.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아니오’라는 답이 나오면 부모님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바꾸어 보라. 




투자의 귀재로 일컬어지는 워런 버핏도 ‘엄마 질문’과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다. 그는 글을 명료하고 쉽게 쓰기로 유명하다. 복잡한 주제에 대해서도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질문을 받자 그는 누이의 관점에서 쓴다고 답했다. 

“똑똑하지만 금융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제 누이들을 떠올리면서 글을 씁니다. 누이들이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도적으로 금융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1 


“부모님도 이해하실 수 있을까?”질문은 면접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한 데이터 분석 전문가가 직장을 옮기기 위해 두 회사에서 면접을 보았다. 그런데 면접 시 데이터를 분석한 뒤 결과를 프레젠테션하는 자리에서 공교롭게도 두 회사의 면접관은 같은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 자료를 데이터 분석 전문가가 아닌 사람에게 설명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진짜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 분야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한다. 그래서 이 질문 하나로 지원자가 실력이 있는가 없는가를 간단히 판단할 수 있다.


<참고 문헌>

1. 내털리 커내버, 클레어 메이로워츠 (2013), 비즈니스 글쓰기의 모든 것,  박정준 옮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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