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저주에서 빠져나오기, 제9원칙
같은 단어라도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이해하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조선시대 실학자였던 박지원 선생의 글에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나온다.
지금 마을에서 어른들은 식초를 ‘단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 어린아이는 ‘단것’을 ‘꿀’이라고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아이는 엄마가 ‘단것’을 사러 간다는 말을 듣고 시장에 따라갔다. 그곳에서 엄마의 어깨에 기대어 손가락으로 ‘단것’을 찍어 맛을 보았다. 아이는 인상을 찡그리며 “시큼한 식초인데 어째서 ‘단것’이라고 말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난감하였다.1
‘단것’이라는 단어를 한 사람은 식초로 다른 사람은 꿀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런 문제는 소통 시 흔히 발생한다. 대화 상대자들이 단어의 의미를 각기 다르게 알고 있다면 그 대화에서 지식의 저주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분명히 이 사람이 당신과 같은 의미로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른 말을 할 때,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는 회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보자. 가령, 같은 단어를 부서마다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면 부서 간 소통 시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구글 인사 부문의 라즐로 복 부사장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가 “우리 회사에 현재 직원이 몇 명이나 있나요?”라고 묻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부서마다 달랐다.
재무팀은 한 주에 한 시간 이상씩 일하는 사람을 현재 직원으로 계산했다. 복리후생팀에서는 적어도 반일제 이상 근무하는 사람만을 현재 직원으로 계산했다. 반면에 채용팀은 고용 제안을 수락하기는 했지만 아직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사람까지도 현재 직원으로 계산했다.
이렇게 ‘현재 직원’과 같은 기본적인 개념의 정의조차도 부서마다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경험을 들면서 복 부사장은 기본적인 용어에 대한 정의를 협의하여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소통을 위한 매우 크고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2
회사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의 의미를 통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새로이 도입하는 용어는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도록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오늘날 삼성을 있게 한 삼성의 신경영(1990년대 초 삼성의 대대적인 혁신으로 외형 중심에서 질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됨)을 담당했던 한 임원은 “신경영 시 용어 정의부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삼성은 회사 안에서 쓰는 용어를 명확하게 통일하고 용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용어집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뒷다리론’은 개인, 집단 이기주의를 경계하는 용어로 달리고 싶은 사람도 뒷다리 잡는 사람이 있으면 못 달린다, 열심히 하는 사람을 가로막고 견제하지 말라는 뜻이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가 통일될 때 소통은 그만큼 정확해질 것이다.
<참고 문헌>
1. 박지원 (1997),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으시오, 김혈조 옮김, 학고재
2. 라즐로 복 (2015),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이경식 옮김, 알 에이치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