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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忘却)과 카레

by 점심노래

3만 장 정도 핸드폰에 사진이 있다.

정확히는 28,006장이다.

사진을 넘기다 보니 이게 언제였지 하는

사진이 보인다.

몇 년 전 어느 술집이었던 거 같다.

분명 내가 날 찍은 사진인데

시간이 흘러서 기억이 안 나는 거겠지만 함께한 사람도 장소도 내 표정도 무슨 감정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난 필름이 끊기는 경우도 거의 없는데..


뇌신경세포를 죽이는 베타 로이드라는 독성물질이

쌓이면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하던데…

내 머릿속 혈관에는 독성 물질이 꽤 누적이 되었는지

내가 찍은 날 잊어버렸나 보다.


재밌는 건 인도 카레에는 두려운 기억을 지우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강황 안에 쿠르쿠민이라는 성분이

두려운 기억을 지워주는데 탁월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람에게 두려운 기억은 무엇일까

여러 기억 중에 꽤 두려운 기억은

아마 내가 누군가에게 잊혔던 일 아녔을까..


내가 망각되었던 두려운 기억을

내가 망각하려면 카레를 적정량 이상으로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누군가를 기억하려 하거나

누군가를 망각하려 하거나

이 모순 같은 반복이 우리 삶의 한 모습인 것 같다.


탱고의 아버지 피아졸라가 카레를 좋아했다면

oblivion(망각)이란 곡을 안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카레 같이 드실 분..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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