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세종조 회례연
2018년 5월 23~26일 | 국립국악원 예악당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사람들은 훌륭한 지도자의 등장을 고대한다. 진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는 시점에 국립국악원의 공연을 만났다. 예악을 정비함으로써 당대의 문화 수준을 드높이고 우리 문화의 근간을 다진 세종대왕을 보며 ‘정치(政治)’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국립국악원이 5월 예악당 무대에 올린 <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는 세종조에 진행된 회례연을 고증해 재구성한 공연이다. 진정한 문화국가 조선을 이룩하고자 한 세종의 업적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국립국악원은 앞서 2008년 12월 18일과 19일 양일간 지금과 같은 제목으로 세종조 정월과 동짓날에 열렸던 회례연을 재현해 송년 공연으로 올린 바 있다. 이후 봄마다 예악당에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세종대왕 탄신을 기념해 경복궁 근정전에서 국립국악원을 대표하는 공연으로 관객에게 선보였다. 근정전 공연은 악사 240여 명, 무용수 160여 명 등 총 400여 명이 출연해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꾸렸다. 그리고 올해는 세종대왕 즉위 600년을 맞아 국립국악원의 본진으로 돌아왔다.
‘회례연’이란 정월과 동짓날 문무백관이 모두 참석하는 잔치로, 오늘날의 시무식∙종무식과 같은 의식이다. ‘세종조 회례연’이라는 부제를 단 공연 <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는 단순히 회례연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1433년(세종 15년) 정월 초하루에 거행된 회례연을 고증하고, 이렇게 성대한 회례연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세종의 업적을 간추려 한 편의 극으로 재탄생시켰다. 백성을 깨우치기 위해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장려했으며, 무엇보다 예악을 중시해 이를 통해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세종이기에 가능했던 풍요로운 연회 현장을 오늘날에 알맞게 옮겨온 것이다.
회례연을 위해 새로 제작한 복식과 의물, 악기와 악곡을 점검하고 그 과정을 임금에게 아뢰는 장면으로 공연이 시작됐다. 임금과 신하 사이 다섯 번의 술잔이 오가며 당시의 상황과 우리 음악을 둘러싼 논쟁, 임금과 신하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특히, 역사 드라마로 대중에게 친근한 배우 강신일이 세종대왕을 맡아 공연의 무게를 단단히 잡아줬다.
서설(序設)과 차대상주(次對上奏), 5작(爵)과 경연(經筵), 예필(禮畢)에 이르는 연회의 정수는 단연 음악과 정재를 즐기는 것이었다. 아악과 당악, 향악까지 경계를 긋지 않고 자유롭게 어우러진 우리 음악과 일무, 정재 등 우리 춤은 한 편 한 편이 모두 귀하고 값진 유산이었다. 음악과 춤이 단단하고 아름다운 골조를 만들고 나니, 의복과 의물이 풍성하게 살을 덧댔다. 국립국악원이 회례연을 올리기 위해 『악학궤범』, 『세종실록』 등을 고증해 제작한 모든 것들이 찬란하게 빛났다.
여기에 세종과 신하들의 경연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임금이 중국의 음률을 버리고 우리 것을 만드는 것이 옳은지를 논의하자 부정(不正)한 기록이 남을까 걱정해 붓을 내려놓은 사관에게 괘념치 말고 그대로 적으라 지시하는 장면. 아악과 향악 가운데 어느 것이 좋냐는 질문에 최윤덕 장군이 겉치레하지 않고 “어릴 적부터 즐기던 동동이 가장 좋다”라고 답하자, 아악은 중국의 성음이니 조선의 음악은 아악과 향악을 겸하고, 민속의 가사를 채집해 고려는 물론 삼국의 음악까지 포용하겠다는 말. 극 중 묘사된 세종의 말과 행동에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
공연의 막바지, 악학별좌 박연은 아악과 향악을 병용하는 것에 문제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세종은 “우리의 기준”을 내세우며 조선의 음악에 대한 포부를 밝힌다. 뒤이어 연주된 음악은 이 공연을 위해 계성원(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이 작곡한 창작정가. 세종대왕이 오늘날 당신께 올리는 이 새로운 음악을 들었다면 어떤 말씀을 전해주었을까. 성군의 말과 음악을 되새기며 치세지음(治世之音)과 오늘날 우리의 예술이 가야 할 길을 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