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체력을 넘어 인생 운동이 되기까지
월, 화, 수, 목, 금 그것도 모자라서 토요일까지. 아침 7시에 수영을 간다. 얼마 전에는 달리기도 시작해 밤에는 러닝화를 신고 동네를 달린다. 운동을 예전부터 좋아했냐고? 아니다. 그러면, 이제 운동이 좀 좋아졌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운동이 꼭 좋아서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겐 운동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 하나는 내 안의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서다. 불안이 뭐길래 매일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는 걸까.
불안은 한 사람을 집어삼킨다. 시도 때도 없이 작은 하나의 사건이나 혹은 그런 촉매가 없어도 불쑥 등장한다. 그러고선 나를 안절부절 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 이런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불안을 운동으로 제대로 다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 한 명은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의 저자 벨라 마키다.
그녀는 오랜 시간 우울증, 불안 장애, 공황 장애로 힘든 시기를 견뎠고 견디고 있다. 그런 그녀가 이혼이라는 큰 상처를 겪고, 달리기로서 본인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불안, 우울증,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그녀가 달리기로 상처를 극복한 과정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몸이라는 게 마음보다는 참 정직하다. 움직이는 만큼 나아지기 시작한다.
나에게 수영과 달리기는 운동 그 이상이다. 불안증에 오래 시달려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이 끈질긴 병은 딱히 해결책이 없다. 불안은 치료가 아닌 다스려야 할 대상이다. 완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물로 잠시 신경이 꺼져도 어느 순간 불안이 불쑥 나타난다. 가끔 나는 차라리 불안 대신에 팔이나 다리가 부러졌으면 한다. 뼈는 어쨌든 다시 붙으면 쓸 수 있으니까. 불안이란 녀석은 도무지 치료가 안되고 평생 나를 갉아먹는다.
달리기는 마법의 명약이 아니다. 이제 나는 달리기로 인생의 모든 슬픔에 면역되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고통에 대처하는 기술을 하나 습득했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려져 내가 다시 일어서긴 할 수 있을까 의심했던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날마다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벨라 마키
저자는 달리기를 통해 우울, 불안, 공황장애, 스트레스를 극복했지만 달리기에도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하지만, 달리면서 고통에 대처하는 기술을 습득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 수영을 가고 달리기를 꾸준히 한지는 거의 1년이 다돼간다. 매일 운동을 하니 조금 나아졌냐고 묻는다면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 운동으로 모든 정신 질환이 완치된다면, 이 세상에는 불안증으로 약을 먹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영을 하고 달리기를 하면서 불안을 잠재우는 기술을 습득했다.
이른 아침 운동으로 하루의 잠시는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다. 수영장 물에 들어가는 차가운 순간 고민은 잠시 일시 정지를 한다. 불안이 (잠시) 사라진다. 자유형 한 바퀴를 돌면 다시 한 바퀴를 더 돌고 싶다. 그렇게 접영, 평영, 배영까지 하면서 50분을 꼬박 채운다. 달리기도 마찬가지. 저자는 달리기가 힘들 때마다 '1분만 더 달리기'를 하자며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구나 1분은 버틸 수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자신과 상관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운동이라고 하면 몸에 좋지만 괴로운 것이라거나 일부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 생각한다. 혹은 몸짱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매일 해야 하는 행위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운동은 양치질처럼 일상이 돼야 한다.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벨라 마키
운동을 꾸준히 해서 좋아졌냐고 물어본다면, 100%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매일 일상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게 큰 도움이 된다. 매일 아침 내가 수영하고 달릴 곳이 있다는 게 많은 위안이 된다. 수영장과 조깅 트랙은 내가 기쁠 때나 우울할 때나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스스로를 달래는 법을, 저자가 말하는 '고통에 대처하는 기술'하나를 터득했다.
내가 나의 고통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만 제대로 알아도 오늘은 무사히 넘어간다. 오늘 밤까지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내일이 오겠지만, 내일도 나름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희망이 생긴다. 때로는 순식간에 희망이 무너져도 다시 몸을 이끌어 움직여주면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통에 대처하는 기술로서 나를 다스린다.
너무 힘든데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몸을 조금씩 움직여 보자. 생각보다 몸은 정직해서 당신이 기울인 작은 노력으로도 고통을 잠시 잊게 도와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오늘 하루도 버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