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7시에 나간다. 피곤한 날은 못 나간다. 그래도 다음 날은 또 나간다. 하루를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리추얼이 된 아침 운동. 원래 운동을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다가 20대 중반 취직을 하면서 회사에서 주던 문화비로 이런저런 운동을 배웠다. 야근, 철야, 주말 출근 등 높은 강도의 업무를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어서 정말 살려고 운동했다. 검도, 복싱, 헬스 등을 거쳐 수영에 정착했다. 그렇게 2년간 수영을 정말 꾸준히 다녔다.
한 사람이 어떤 걸 꾸준히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영을 하고 나서 느끼는 개운함, 수영장 염소 냄새, 물질, 수영장에서 하는 샤워. 그 모든 수영에 관한 활동이 매일매일 쾌감을 주었다. 그렇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 6회 아침 7시에 꼬박꼬박 출석했다. 나는 왜 이렇게 운동에 집착했을까? 본능적으로 운동이 주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수영이 가져다주는 확실히 기분이 좋아지는 '실감'은 제대로 알고 있었다.
우리가 운동에 대해 잊고 있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책 <움직임의 힘>에서는 운동이 주는 긍정적 효과를 면밀히 분석해내, 당장 운동하게 만들도록 독자를 설득시킨다. 실제로도 여러 연구에서 고강도 운동이 엔도르핀과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화학물질이 나온다. 특히, 이 엔도카나비노이드는 대마초에 의해 모방되는 화학물질로, 통증을 가라앉히고 기분을 고양시켜준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달리기가 주는 쾌감인 '러너스 하이'도 여기에 속한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중간 강도로 꾸준히 하는 신체 활동이 운동의 짜릿함을 느끼게 해주는 '엑서사이즈 하이'의 핵심 열쇠이다. 자전거, 경사진 트레드밀에서 걷기, 등산을 통해서도 엔도카나비노이드가 비슷하게 증가했다.
얼마 전 자기 회고 글쓰기를 하면서 깨달은 슬픈 사실 중 하나는 처음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나 지났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끊임없이 그때그때마다 증상은 다르지만 우울증, 불안증, 양극성 장애로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나는 분명히 수영을 시작한 이후로는 항우울제를 먹지 않았다. 약을 먹는 것 자체가 나에겐 너무나 큰 에너지를 뺏어가는 일이기도 했고 이제는 그만 좀 먹고 싶기도 했다. 어쨌든 아침에 수영이 끝나고 나면 하루를 더 살아갈 작은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 들었다. 그걸로 하루를 버티고 또 다음 날 에너지를 얻었다. 가끔 수면제를 먹는 날도 있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실제로 <움직임의 힘>에서는 신체 활동이 가져다주는 항우울 효과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읽으면서 내가 왜 항우울제를 먹지 않아도 버텼는지 알 수 있었다.
"나한테는 달리기가 항우울제나 다름없어."
건강심리학자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 강사인 <움직임의 힘> 저자 캘리 맥고니걸 박사도 운동의 혜택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그는 불안증세가 나타날 때면 몸을 움직였다. 조금의 신체 활동으로도 불안감이 줄어들고 끊임없이 맴돌던 생각이 멈춘다고 전했다. 운동 중재에 대한 2017년 메타 분석 결과, 신체 활동은 불안 장애에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드러났다.
최근 나에게 너무나 큰 일들이 벌어졌다. 가정 폭력으로 집에서 도망치듯 나왔고,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가족 간의 관계가 이제 끊어져버렸다. 더 이상 연락하기를 거부하는 엄마도, 내가 받은 상처도, 힘들어진 생활도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이런 힘듦을 생전 겪어본 적도 없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 가족과 관계가 끊어져 버리는 것은 나의 존재가 끊겨버린 절망적인 기분을 주었다. 나는 매일 우는 것 말고는 이 관계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특히 엄마와의 단절로 모든 게 무너져 버려 너무 하루하루 숨 막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내가 믿었던 유일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슬프지만 살아야 하고, 뭐라든 어떻게든 해서 버텨야 살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아침에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예전만큼 의욕도 없지만 그래도 운동이 줬던 에너지는 여전히 몸이 기억한다. 힘든 시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런 방법은 없다. 그저 버텨야 한다. 사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 고통의 연속이기에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 <움직임의 힘>을 읽으면서 계속 줄을 쳤다.
이걸 꼭 기억하라고. 움직이면 어떻게든 기분이 좋아지고 하루를 버틸 힘을 줄 것이라고 자신에게 되뇌었다. 그 힘으로 나는 오늘 아침에도 뛰러 나갔다. 그 순간만큼은 햇살을 쐬어서 기분도 좋았고 예쁘게 핀 꽃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나는 오늘을 버틸 힘을 얻었다. 내일도 뛰러 나갈 거냐고? 물론. 항우울제 대신에 이번에는 온몸으로 버텨내려고 한다. 분명 또 무너지겠지만 아무렇지 않게 다시 움직일 것이다. 이걸 반복하다 보면 다시 예전처럼 애쓰지 않고 살 날이 오겠지. 그 날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버틸 것이다. 그리고 내 곁에는 여전히 나를 지지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으니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힘든 시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다시 나에게 물어본다. 그저 계속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움직임의 힘을 뼈속까지 알았으니, 이제 내 몸으로 이 시기를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먼저 한 번 속는 셈 치고 움직임에 몸을 맞겨보는게 어떨까? 움직인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당장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을 줄 것이다. 그 하루가 쌓이고 쌓여 당신도 예전의 밝았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자. 그리고 잘 버텨내자.
참고 <움직임의 힘>, 켈리 맥고니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