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의 회전문이 돌아가기 전, 그들의 시간

장편의 강렬함을 단편으로 완성하다, 『매스커레이드 이브』를 읽고

by 심야서점

호텔의 회전문이 돌아가기 전, 그들의 시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읽으며 느꼈던 짜릿함을 기억하시나요? 호텔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수사극, 그리고 그 안에서 가면을 벗기려는 형사 닛타와 가면을 지키려는 호텔리어 나오미의 팽팽한 신경전은 독자를 단숨에 매료시켰습니다.


소설 <매스커레이드 이브>는 바로 그 두 주인공이 만나기 전, 각자의 위치에서 마주했던 사건들을 담은 프리퀄(Prequel) 단편집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두 캐릭터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는지, 그 '원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행선 위에서 성장하는 두 사람


이 책은 총 4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닛타와 나오미가 함께 등장하지 않고, 각자의 시점에서 독립적인 에피소드를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설익은 신참 형사 닛타, 그리고 이제 막 업무에 적응하기 시작한 호텔리어 나오미. 독자는 각각의 단편을 통해 두 사람이 겪는 시련과 성장을 목격합니다.


범죄자의 심리를 파고들며 '의심'의 날을 세우는 닛타

손님의 사연을 보듬으며 '배려'의 깊이를 더하는 나오미


서로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평행선처럼 달리던 두 사람의 서사는 마지막 에피소드에 이르러 절묘하게 교차합니다. 비록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는 않지만, 사건을 통해 간접적으로 얽히며 훗날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 펼쳐질 콤비 플레이의 필연적인 서막을 알립니다. 이 정교한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묘미입니다.


장편의 여운을 길게 늘이는 작가의 마법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그의 독특한 작품 전개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강렬한 장편 소설로 독자를 집중시킨 뒤, 그 세계관을 단편으로 확장하여 여운을 이어가는 데 능숙합니다.


"강렬한 장편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뒤이어 단편으로 이야기의 결을 풍성하게 채운다."


이런 패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라플라스 시리즈인 <라플라스의 마녀> 이후 주인공의 각성 과정을 담은 단편집 <마력의 태동>을 내놓았던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블랙 쇼맨> 시리즈 또한 장편과 단편을 오가며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었죠.


저는 개인적으로 작가의 이러한 스타일을 선호합니다. 장편 소설이 끝난 뒤 찾아오는 아쉬움을 달래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했던 캐릭터들의 숨겨진 이면을 단편이라는 형식을 통해 더 다채롭게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매스커레이드 이브>는 단순한 외전이 아닙니다. 본편인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필수 안내서와도 같습니다.


이미 호텔 코르테시아의 문을 열어본 독자라면, 그 문이 열리기 직전의 '전야(Eve)'를 다룬 이 책을 통해 닛타와 나오미의 매력에 다시 한번 빠져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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