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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Aug 08. 2019

저는 잘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예쁘지 않습니다.


유튜브에서 화장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뷰티 크리에이터 B씨가 한 말이다. 항상 화장을 하고 방송을 했던 그녀는 어느 날 화장을 지우고 민낯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는 자신을 예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동영상은 500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세간의 화제가 되었는데 며칠 뒤 한 방송매체에서 B씨의 인터뷰를 들을 수 있었다.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댓글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 중 초등학생이 값비싼 화장품을 샀다거나 또는 못생긴 자신의 얼굴도 화장하면 언니처럼 예뻐질 수 있냐는 댓글을 보면서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것이 민낯으로 동영상을 촬영한 이유라고 했다.


동영상을 올린 이후 ‘네 얼굴 좀 봐라’, ‘너 같은 건 죽어야 한다.’라는 식의 입에 담지 못할 댓글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B씨를 보며 힘을 내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이 생겼다고 했다. 못생겼다는 강박 때문에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힘을 내기도 하고 더 이상은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겠다는 사람,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즐기면서 살겠다는 사람도 생겼다고 했다.


뷰티 크리에이터 B씨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외모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는 걸 알 게 되었다. 예뻐지고 싶은 걸 넘어서 안 예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게 됐다. 특히 못생긴 얼굴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누군가의 사연은 충격이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나 역시도 외모에 대한 강박 때문에 누구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낸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인기했던 어린 시절의 나

부모님 말에 의하면 어릴 때 나는 인물이 되게 좋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나를 안고 밖에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나보고 잘생겼다며 내 손에 돈을 쥐어줄 정도로 인물이 좋았다고 하면서 가끔 어릴 때의 얘기를 하신다.


점점 커가면서 어릴 때의 외모가 조금씩 변하긴 했지만 초·중학교 때까지는 학교에서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외모때문이라기보다는 초등학생 때는 브레이크 댄스를 춘 덕분에, 중학교 때는 마술을 한 덕분에 주위로부터 호감을 많이 샀다.


중학생 때 사귄 여자 친구 중에는 그 당시 인기 커뮤니티였던 다모임에 ‘인터넷 얼짱’에 등극한 여자 친구도 있었는데 그런 여자 친구를 사겼을 정도로 내 인기는 괜찮은 편이었다.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많이 받다 보니 이때까지만 해도 외모에 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 얼굴이 역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안 나던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여드름이 하나 둘 씩 올라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얼굴 전체가 여드름으로 꽉 찰 정도로 많이 났다. 거기에다 눈이 나빠지면서 안경까지 쓰게 됐다. 키가 쑥쑥 자라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나는 중학교 때 키 그대로였다. 가뜩이나 마른 몸인데 키 크기 위해 했던 줄넘기 때문에 살은 더 빠졌다. 해골처럼 보일 정도로 볼이 홀쭉해져버렸다.


키 작고 말랐으며 여드름투성이인데다 안경잡이였던 나는 전형적인 멸치스타일이었다. 그런 내가 외모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건 성인이 되고 난 이후부터였다.

 


생각없이 툭 내뱉는 사람들의 말말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고 물었다. 거기에다 피부는 또 왜 이렇게 됐냐는 얘기까지 같이 들어야 했다. 한두 번은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매번 똑같은 얘기가 반복이 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살 빠졌다고 말하진 않을까 하고 미리부터 신경이 쓰였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몇 년 동안 같은 말을 듣다보니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대인기피증이란 게 따로 없다는 걸 그때 느꼈다. 길을 걸을 때 아는 사람을 만날까 두려워 사람들이 없는 길로 둘러가기도 했지만 외모에 대한 지적은 나를 아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이 더 쉽게 말을 내뱉곤 했다.


친구와 함께 편의점에 들렀다. 카운터에서 사장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이 친구(지인)는 참 잘생겼는데
저 친구(나)는 좀...”


친누나와 함께 옷을 사러 옷집에 들어갔다. 옷집 사장님은 우리보고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남매라고 말했더니 누나와 나를 번갈아보던 사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누나는 예쁜데 동생이 좀...”


이처럼 외모에 대해 지적을 하는 것은 모르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가 싶었다. 기분이 나쁘다 못해 불쾌함마저 들었지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한 여자 후배에게서는 내가 중학교 때는 진짜 잘생겼었는데 지금은 영 아니라는 식의 얘기를 들으며 대놓고 무안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자꾸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다보니 사람들 앞에만 서면 위축이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은 나를 싫어할 게 분명하다며 지레 겁을 먹고 다가가지 못했다. 카페나 식당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이 나에게 까칠하게 대하면 내가 못생겨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나의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생애 가장 꽃다운 나이인 20대를 가장 못난 모습으로 보내야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내가 꽃미남 친구를 부러워 한 이유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면 참 부러웠다. 훌륭한 외모를 가진 사람은 어딜 가도 환영받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제일 처음 느꼈던 건 대학교 1학년 때다. 당시 같이 다니던 친구 두 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꽃미남 스타일의 굉장히 잘생긴 친구였다. 그 친구는 가만히 있어도 주위에서 먼저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여자뿐만이 아니라 동성인 남자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술자리에서도 사람들은 그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며 호감을 보였다. 그걸 보면서 ‘잘생긴 사람은 사람을 사귀는 것도 참 쉽구나.’ 라는 걸 느꼈다. 그 친구가 부러웠다.      



외모 꾸미기 + 마음 가꾸기

꾸준히 피부관리도 하고 운동도 한 덕분에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여드름 흉터는 남아있지만 이제 여드름은 거의 안 난다. 몸도 얼굴도 여전히 말랐긴 하지만 예전처럼 볼이 푹 꺼진 느낌은 덜 하다.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얼굴이 왜 그렇냐?”라거나 아파 보인다는 식의 얘기는 거의 듣지 않는다.


이제는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부지런히 외모를 가꾼 노력 덕분이었지만 그것이 꼭 외적인 노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꾸미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내 마음을 바꾸기 위한 내적인 노력이었다.


사람들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여러 모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의 외모를 칭찬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남들에게 어떻게든 더 멋있게 보이고 싶어 꾸미는 데 노력을 많이 들였지만 남들은 그렇게 봐주지는 않았다. 그저 평범하다는 듯이 얘기를 많이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얘기하는 걸 보면서 '나는 평범한 외모의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못나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인정하면서부터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지 않게 되었다. 


외모에 대한 집착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지금의 내 모습도 충분히 괜찮다고 받아들였을 때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것은 나로부터의 자유로움이자 타인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었다. 그 이후로는 남이 뭐라고 하던 예전만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 외모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나 자신이 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사람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그만큼 커져갔다. 속이 상한 적이 많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긍정해보니 그래도 힘든 시간만큼 공부가 많이 된 것 같다. 피부와 운동, 건강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는데 그런 지식보다 더 큰 깨달음은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였다.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주위를 보면 외모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많다.


“살 찐 것 같다.”

“안본 새 많이 늙었네.”

“왜 이렇게 말랐냐?’ 살 좀 쪄라.

 바람에 날아가겠네.”


일상 속에서 쉽게 하고 또 듣는 말이다. 그냥 하는 말이라고 하겠지만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냥 하는 말이 될 수 없다. 


안부를 묻는다거나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쓸데없는 안부와 걱정이 누군가에는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적어도 나만큼은 사람들의 외모에 대해 지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쁘든 안 예쁘든 키가 크든 작든 뚱뚱하든 날씬하든 상관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다. 외모 가지고 놀리는 것은 장난으로라도 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개그맨 누구 닮았다며 웃는 사람이 있어도 나는 동조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외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길을 가다가 얼굴이 조금 이상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을 봐도 혹시나 내 시선이 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진 않을까 싶어 쳐다보지 않는다.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쏘아보는 그 시선들이 당사자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거울을 봐도 여전히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얼굴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계속 눈에 띈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칭찬하려고 한다.


이성에게 눈에 띌 만한 멋진 외모가 아니라도 괜찮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외모와 상관없이 나라는 사람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니까. 


그래도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 감사하다. 이런 나를 좋아해주는 여자 친구들도 제법 있었으니 말이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나와 사귄 여자 친구들은 하나 같이 나보고 잘생겼다고 말했다. 요즘은 모태솔로도 많은데 그래도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마음껏 사랑을 나눠봤으니 어떻게 보면 참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제법 괜찮은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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