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아스트라제네카(AZ) 접종 후 부작용을 겪은 지 78일이 되었다.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하루하루가 버거운 요즘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다.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7살이었던 그 당시에 활동했던 독서모임에서 꿈명함 만들기라는 것을 한 적 있었다. 참여인원은 나 포함 5명이었다. 사람들과 모여 먼저 각자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제 꿈은 저만의 옷브랜드를 만드는 거에요."
"저는 평범한 일상에 소음을 일으키는 문화기획자가 될 겁니다."
"저는 북한 아이들을 돕고 있는데요. 더 많은 아이들이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게 제 목표예요."
다음은 내 차례였다.
"저는 한국 제일의 갑부가 되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버는 데 그치지 않고 나누고 봉사하는 자선가가 될 거고요. 장사에 관심이 많아서 제 자신을 브랜드화한 장사꾼도 되고 싶고요. 마술을 할 줄 아는데 마술로 사람들에게 즐거움도 주고 싶고요. 또 영어 잘하는 게 꿈이라 유창하게 영어도 잘하고 싶어요."
그때는 꿈이나 목표에 대해 얘기나눌 만한 사람도 없었고 얘기를 한다고 해도 철 없는 소리 취급 당해서 꿈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만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차례가 끝나고 이제 한 사람 남았다. J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남색 모자를 푹 눌러쓴 그녀는 왠지 어두운 분위기를 풍겼다. 모자를 얼마나 깊게 썼던지 그녀가 고개를 들지 않으면 얼굴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사각형에 가까운 검은색 뿔테안경 때문에 그녀의 눈을 마주치기가 더 어려웠다. 그녀가 어떤 꿈을 이야기할지 궁금했다. 그녀가 수줍게 입을 열었다.
"제 꿈은요... 하루 잘 살기예요."
엥? 하루 잘 살기라고? 그 말을 듣는데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억대부자나 성공한 사업가와 같이 감히 이루기 어려워 보이는 것들을 꿈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을 꿈이라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루 잘 살기라는 것을 꿈으로 삼게 됐는지 궁금했다. 그녀가 말했다.
"예전에 몸이 안 좋아서 오랫동안 병원에서 지낸 적 있는데 그때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을 정도로 많이 아팠어요. 그렇게 아프고 보니까 당장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더라고요. 여전히 몸이 회복 중에 있는데 그런 일을 겪다보니 하루를 잘 사는 게 제 목표가 됐어요."
그녀의 사연을 듣고 보니 그런 그녀의 꿈이 이해는 됐지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내가 그녀만큼 아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잊고 살았다. 그러다 백신 부작용을 겪고 있는 지금에서야 그녀가 말한 '하루 잘 살기'라는 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요즘 하루를 잘 살자는 목표를 가지고 매일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에서 만들었던, 저마다의 꿈이 담긴 꿈명함
손발저림, 다리통증, 무기력함, 가슴두근거림, 호흡불편 등등 다양한 백신 부작용을 겪은 지도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이제 세 달을 향해 가고 있다. 어제도 아팠고 오늘도 아팠다. 내일도 아플 것이다. 당장 아픈 것보다 더 힘든 건 이 고통이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는 점이다. 한 점의 빛이 통하지 않는 긴 터널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언제 끝날까. 과연 낫기는 하는 걸까. 몇 번을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생각할수록 괴롭기만 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렇다. 하루 잘 살기다.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다보면 시간이 가겠지. 그렇게 하루이틀, 한달 두달이 지나다보면 몸이 회복되어 예전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겠지. 7년 전에 만났던 J처럼 나 역시도 그녀와 같은 꿈을 꾸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하루를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좀 더 보람차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문득 얼마 전 지인이 내게 보내준 글귀가 생각났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버의 평온의 기도라는 제목의 기도문이다. 마음이 어지러운 내가 새겨들어야 할 문구임에 틀림없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구분했다. 몸이 아프다. 아픈 건 시간이 약이라 당장은 고칠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겸허히 받아들이자.
그렇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아파서 그 좋아하던 복싱도 못 가고 있고 카페에서 노트북을 하며 놀지도 못하고 공부를 할 수도 없어 슬프지만 이 참에 좀 쉬자. 집에서 책도 보고 영화도 보자. 손 놓고 있던 글도 다시 써보자.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살자. 매일 하루하루를 잘 살다보면 나아지겠지. 건강해져서 다시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래서 내 꿈을 새로 정했다. 하루 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