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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Nov 07. 2019

외로울 때면 혼자 산을 오른다.

집 뒷산부터 한라산까지

혼자서 산을 오른다. 울적하거나 뭔가 답답할 때 기분전환을 위해 오른다. 내 마음 속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을 때도 산을 찾는다.

산을 오르는 과정은 힘들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고 나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제대로 실감하는 순간이다. 답답했던 가슴이 확 트인다. 평소엔 무맛이던 물이 정상에서 마시는 순간 꿀맛으로 변한다. 산에서 까먹는 도시락은 어쩜 그렇게 맛있는지, 그 맛에 산에 오른다.


지금까지 다양한 지역에 있는 산을 오르내렸다. 제일 많이 오른 곳은 집 뒷산이었다. 김해에 살 때도, 부산에 살 때도 집 뒤에는 항상 산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산을 만날 수 있었다.


풍경이 가장 아름다웠던 산은 영남알프스로 불리는 신불산과 간월산이었다. 산 정상에 도착하기 전 중턱에 도시락을 먹으며 쉴 수 있는 넓은 자리가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히 장관이다. 이곳은 지인과 함께 갔는데 우리가 싸온 메뉴는 바로 족발이었다. "이 맛에 등산하는 거지!!"하고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옆을 지나가던 한 이모님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총각들 봐라. 진짜 맛있게 먹네. 달라는 소리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고 맛있게 먹어요, 총각들. 호호호."


내가 대답했다.


"네. 저도 안 줄거니까 신경 안 쓰고 맛있게 먹을게요^. ^ ㅋㅋㅋ"


처음보는 사람과도 편하게 인사하고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산이었다.



혼자 제주 한라산에 오르다

산하면 잊을 수 없는 산이 바로 한라산이다. 한라산을 오른 건 혼자 첫 제주여행을 떠났던 26살 때였다. 2박 3일의 일정이었다. 짧은 시간이었기에 관광지를 많이 다니는 게 좋은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왠지 한라산에 오르고 싶었다. 1,950m가 얼마나 높은지 생각지도 않은 채 무모하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른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나온 거리를 보니 정상까지는 아직 반에 반에 반도 오르지 않았다. 좀 더 올랐다. 여전히 정상은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그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가 멀어서 힘든 건 둘째치고 얘기할 사람이 없어 너무 외로웠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정상까지는 4~5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입을 꾹 닫고 정상까지 오른다 생각하니 끔찍했다. 다시 내려갈까 하고 뒤를 돌아봤다. 이미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있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정상을 향해 올라야 했다.


싸가지고 온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왜 그랬나 모르겠다. 한라산 등반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왔나보다. 점점 숨은 차고 배는 고팠다. 한 시라도 등산을 일찍 마치려면 서둘러 걸어야 했다. 쉬지 않고 걸었다. 4시간쯤 지났을까?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겨우 한라산 정상에 도착했다.

한라산 백록담이다. "물이 겨우 이것밖에 없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정도면 제법 물이 많이 모여있는 거라 했다. 전날 비가 내려서 그런지 이만큼이나마 물이 고여 있을 수 있었던 듯하다.


한숨 돌리고 곧바로 하산했다. 힘들고 배도 고파 지상을 밟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평소의 등산과는 달리 사색따위는 없었다. ㅋ 생존본능이 발동했다. 살기 위해 재빨리 걸었다. 3시간 30분만에 겨우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아스팔트 땅을 밟는 순간 살았다 싶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총 7시간 30분이 걸린 나의 한라산 등반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그때 가보길 잘했어

두 번 다시는 혼자 한라산에 오를 생각은 없다. 공짜로 보내줘도 한러산만큼은 혼자는 안 간다. ㅋ 그 당시 긴 산행에 몸은 몸대로 지쳐있었고 아무 말도 안 하고 혼자 오르다 보니 마음은 마음대로 혼이 나가있었다. 그야말로 탈탈 털린 셈이다.


그래도 그때 다녀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라 외롭고 심심했지만 혼자서라도 잘 다녀온 것 같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한라산 정상에서 본 신선들이 사는 것 같은 멋진 풍경도, 백록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낯선 세상에 혼자라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한 덕분에 한라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고 잊지못할 추억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등산을 시작하게 된 계기

산을 좋아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몸이 약한 나를 데리고 등산을 하려는 바람에 억지로 따라갔다. 용돈을 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몇 번 따라갔을 뿐 산이 좋아서 오른 건 아니었다.


산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 실연에 대한 아픔을 극복하면서부터였다. 몇 년 전 호감이 가는 여성이 있었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꾸만 마음이 엇갈렸다.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결국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너무 힘들었다. 일을 해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 아는 형에게 연락을 했다. 형네 집에서 술도 한 잔 하고 주말에는 잠도 잤다. 그러다 형이 말했다.

 

"등산 갈래?"


그때만 해도 등산에 별 관심이 없을 때였지만 뭐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무작정 따라나섰다. 햇살이 따스한 날 김해 장유에 있는 용제봉에 올랐다.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우울한 마음때문인지 몸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오를수록 숨은 가빠지고 다리도 아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과 달리 마음은 더 가뿐해졌다. 울적한 기분이 사그라들면서 마음 한 구석에 긍정의 에너지가 조금씩 싹 트는 것이 느껴졌다. 우울할수록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산 정상에서 얻은 소소한 깨달음

더 큰 깨달음을 얻은 건 산 정상에 올랐을 때였다. 정상에 올라 산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감상했다. 수많은 아파트와 건물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보였다. 그냥 보이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작아 보였다. 팔을 뻗어 쥐고 있던 손을 편 후 저 멀리 보이는 건물과 자동차를 손톱과 견주어보았다. 새끼손톱보다 더 작았다. 그때 생각했다.


'크기가 새끼손톱만도 못한 것들에 내가 그동안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살았구나.'


가까이서 봤을 땐 그렇게 거대한 것들이 멀리서 바라보니 손톱에 낀 때보다도 작게 보였다. 그 순간 세상을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게 하는 지혜와 여유를 얻게 되었다.


혼자하는 등산의 매력

등산을 좋아하는 지인과 함께 산을 오를 때도 있지만 혼자 등산을 할 때가 더 많다. 혼자 등산하면 무슨 재미냐고 할 수 있지만 함께 할 때와는 달리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가장 큰 매력은 사색이다. 도시 속에서는 빡빡한 시간 속에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사색할 수 있는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없다. 하늘 한 번 쳐다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산을 오르면 가능하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 있으면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자동차 매연 대신 나무가 내뿜어주는 깨끗한 산소를 들이키면 제대로 된 힐링을 경험할 수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지난 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지금의 내 모습을 관찰해보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칭찬을 곁들이며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거기에다 건강은 덤이다. 등산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신체건강 못지않게 정신건강에도 더할 나위 없이 더 좋다. 매일 등산을 하라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등산 후 우울증을 고쳤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등산은 마음정화에 그만이다.


지금도 가끔 산을 찾는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마음이 답답하거나 울적할 때, 삶의 여유를 가지고 싶을 때면 산을 오른다. 혼자 산을 오르며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정상에 다다를 때쯤이면 또 다른 나와 마주한다.


최근엔 무릎이 안 좋아서 등산을 자주 못하고 있다. 이 나이에 벌써 무릎통증이라니... 짜증 지대로다. 한의원에 가서 침이나 맞든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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