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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Sep 25. 2019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다는 오해

경상도 토박이인 저, 하나도 안 무뚝뚝하거든요?

경상도 사람이 무뚝뚝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이 있어서 그런지 경상도 남자들, 그러니까 표현에 서툰 대다수의 경상도 남자들은 "표현을 잘 못합니다."라는 말 앞에 항 이런 말을 덧붙인다.

"제가 경상도 남자라서요.."


경상도 남자가 스스로를 무뚝뚝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타지 사람들도 경상도 남자가 무뚝뚝하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경상도 사람을 실제로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경상도 남자는 하루에 "밥 뭇나?", "아는?", "자자." 이 세 마디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이런 농담을 들은 사람은 경상도 남자를 무뚝뚝하다고 생각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렇다면 과연 경상도 남자는 소문만큼 무뚝뚝할까? 아래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언젠가 한 번은 친누나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하게 되어 친누나의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누나 먹으라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꺼냈고 누나는 밥을 맛있게 먹으며 나와 대화를 나눴다. 내가 최근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누나한테 얘기를 해줬는데 내 말과 표정이 웃겼는지 누나는 밥을 먹다 말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엿들으며 누워있던 한 아주머니분이 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옆에 누구예요? 동생이에요?"

"네~~"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

"동생이 참 잘 웃고 상냥하네. 아이고 부러워라~ 내 친동생은 경상도 남자가 돼가지고 무뚝뚝해가 말도 안 하는데 그쪽 동생은 어째그래 상냥하고 서글서글하노. 내는 남편도 경상도 남자인데 무뚝뚝해서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어."

그 말을 들은 누나가 대답했다.

"제 동생도 경상도 남자예요. 그리고 제 남편도 경상도 남자인데 둘 다 하나도 안 무뚝뚝해요.^^"


그 아주머니의 동생과 남편도 경상도 남자고 우리 매형과 나도 경상도 남자인데 누구는 무뚝뚝하고 누구는 안 무뚝뚝한 이런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국엔 지역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 생각한다. 경상도 남자라서 무뚝뚝한 게 아니라 경상도 남자 중에도 무뚝뚝한 사람도 있고 안 무뚝뚝한 사람도 있다. 반대로 서울 사람이라고 해서 다 상냥한 건 아닐 게다. 상냥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히려 경상도 남자보다 더 무뚝뚝한 서울 남자도 있을 것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외삼촌을 보면 자녀들과 아내에게 그렇게 자상하게 대하는 것 같지도 않고 서울 토박이인 지인들을 만나봐도 그리 상냥하다는 느낌은 없다. 사람마다 다른 셈이다. 경상도 남자가 무뚝뚝하다는 말은 어찌보면 편견인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경상도 남자가 조금 더 무뚝뚝할 확률은 있겠지만 말수가 적거나 서툰 표현의 원인을 무뚝뚝함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경상도 남자가 무뚝뚝하다는 말은 왜 생긴 걸까? 추측해 보건대 말투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경상도 사투리는 억양이 세다. 말투도 딱딱하다. 언뜻 들으면 화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살짝 과장해서 예를 들면 이렇다.


"밥은 먹었어?^^" →  "밥 뭇나?!!"

"어디 가?^^" → "니 어데 가노?!!"

"뭐라고 했어?^^" → "뭐라카노, 지금!!"


한 번은 서울 토박이인 지인들을 만났는데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얘기가 나오길래 막 흥분하며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로 크게 말을 했더니 내 말을 듣던 사람들이 나를 빤히 보더니 내게 물었다.

"너 화났어?"

이런 오해를 받는 걸로 봐서는 타지 사람이 경상도 사람의 말투를 들으면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쨌든 억양이 센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때문에 무뚝뚝하다는 오해를 샀을 뿐 경상도 남자도 사람 나름이다.


표현할 줄 모른다는 것은 무뚝뚝해서가 아니라 연습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의 50~60대 아버지들은 오늘날의 20~40대 아버지들과는 살아온 환경이 많이 다르다. 민주주의를 챙취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했고 오로지 경제발전을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 했던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오다 보니 정작 가족을 돌볼 시간이 부족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지다 보니 대화를 할 시간도 마음을 표현할 시간도 줄어들어 버렸다. 이제서야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 하더라도 오랜 세월동안 쌓여서 만들어진 서먹함이라는 벽 때문에 가족과 소통하는 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안 하던 사랑한다는 말을 갑자기 하려니 쑥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어색한 상냥함보다는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무뚝뚝함을 택한 게 아닌가 싶다. 그 결과 챙겨주는 듯 아닌 듯 츤데레처럼 무뚝뚝하게 말을 툭툭 내뱉는 것이 경상도 남자의 상징이 돼버렸다.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을 줄 때도 이렇게 말한다고 하지 않는가.

"오다 주웠다."


요즘 사회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무뚝뚝한 사람들보다는 상냥함과 쾌활함으로 무장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오늘날의 20~30대 사람들이 결혼해서 나중에 50~60대가 됐을 때쯤이면 지금보다는 무뚝뚝한 아버지가 적어지지 않을까 싶다. 따뜻한 마음을 부드럽게 표현할 줄 아는 신세대 아버지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 역시도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하며 미래를 떠올려본다. 자상한 남편,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본다. 물론 아직까지는 결혼생각이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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