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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Sep 23. 2019

나이들어 하는 공부가 '진짜'공부라더니

32살 늦깎이 대학생입니다

2019년 올해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32살의 뒤늦은 나이에 대학교에 입학했다. 나의 최종학력은 고졸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학중퇴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4년제 대학에 입학했으나 1학년 1학기만 하고 자퇴를 했다. 내가 생각한 대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퇴 후 내 인생에서 대학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실제로도 그랬다. 허나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점점 대학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고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때문이었다. 무시와 냉소는 덤이었다.


평소 남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대학을 안 나왔다고 무시받는 게 싫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려면 대학은 필요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대학을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직장이 안정을 찾을 때쯤 같이 대학을 다니자며 지인이 권유를 했다.


'막상 대학교를 가려니 귀찮네. 그냥 내년으로 미룰까?'

처음엔 이렇게 고민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때 지인이 말했다.


"지금 대학을 다녀도 4년은 가고 안 다녀도 4년은 간다."

이 말 한 마디에 바로 학교 등록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방송통신대학교 1학년 신입생이 되었다.


뒤늦게 대학을 다닌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공부와 과제, 시험 등등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피곤한 생각도 들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생각에 걱정보단 설렘이 더 컸다. 방송통신대학교 특성상 매일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진 않고 인터넷 동영상 강의로 공부를 하다보니 20살 때 다니던 대학과는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학기마다 출석수업과 출석시험이 있었고 기말고사도 지역대학에 가서 여러 대학생들 틈에 끼어 함께 시험을 봐야 했기에 내가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기분을 실감하기엔 충분했다.


1학기 때는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었다. 그 덕분에 한 학기가 정신 없이 지나갔다. 방학 후 2학기가 시작되었고 얼마 전 출석수업 참석을 위해 학교에 갔다.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공부를 하는데 문득 '나이들어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라고 하는 말이 떠올랐고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늦깎이 대학생 또는 만학도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짐작해 보건대, 억지로 하는 공부는 하기도 싫을 뿐더러 머릿속에도 안 들어온다. 반대로 내가 배우고 싶어서 하는 공부는 자율적으로 하게 되기 때문에 배우는 재미도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게 된다. 배운 것을 써먹을 수도 있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직업을 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나이들어 하는 공부를 진짜공부'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비록 한 학기밖에 안해봤지만 이러한 말의 의미를 확실히 느끼고 있는 것은 수험생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다르다는 걸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공부를 꽤나 열심히 했다. 중학생 때는 학교를 마친 후 학원에 가서 밤 11시까지 공부했고 고등학생 수험생 시절에는 밤 9 ~ 10시에 학교를 마친 후 바로 독서실로 가서 새벽 1 ~ 2시까지 공부했다. 주말에도 쉬는 날보다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날이 더 많았다. 좋아서 그렇게 공부에 매진한 게 아니었다. 그땐 그렇게 공부해야 하는 줄 알았다. 어릴 땐 이게 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무한경쟁과 대학만능주의의 병폐인 줄도 모르고 학생이라면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또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은 필수코스라는 분위기때문에 억지로라도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억지로 하다보니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었다. 여느 수험생들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3년 내내 하루에 4시간씩밖에 잠을 못자다보니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 있었다. 매일이 힘에 부치는 데도 어떻게든 일어나 달려야 했다. 그때만큼 공부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들처럼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   


학창시절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유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했기 때문이다. 타의에 의해 억지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공부를 하는 중, 고생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그땐 모른다. 공부를 그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뿐이니 '진짜공부'의 의미를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나이를 들어봐야 공부의 이유가 생긴다. 자연스레 진짜 공부의 의미도 알 수 있으리라.


나이들어 다니는 지금의 대학이 20살 때 다니던 대학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배우고 싶은 학문을 배운다. 식품영양학을 배우고 있다. 예전부터 건강에 관심이 많아 건강과 음식의 상관관계에 대해 배우고 싶어 이 과를 선택했다. 내가 관심 있어하는 학문을 공부하다보니 확실히 공부가 재밌다. 궁금증이 생겨서 하는 공부라 순간순간 호기심이 발동한다. 


물론 목표는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다. 졸업을 해서 나도 대학졸업장을 받고 최종학력을 대졸로 바꾸는 것이 내가 대학교에 들어간 이유인 것은 맞다. 하지만 단순히 대학졸업만을 목표로 했다면 예전처럼 1학기만 해보고 자퇴를 했을지도 모른다. '왜'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하는 공부여서 재미가 있다. 때로는 과제도 하기 싫고 시험에 대한 부담도 크지만 그런 귀찮음보다는 배우는 재미가 더 크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게 된다.


학교 공부는 좁은 의미의 공부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공부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이 공부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대학 공부뿐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쉬지 않고 공부하고 있다. 책을 통해 수많은 지성인들을 만남으로써 성공과 실패에 대해 배운다.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배운다. 주위 사람들과 마찰이 생길 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봄으로써 사람 관계에 대해 배운다. 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에서 바로바로 검색하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특히 국어에 관심이 많은데 헷갈리는 단어나, 어법, 띄어쓰기, 사자성어 등등이 있으면 바로 검색을 해본다. 내가 궁금해서 자발적으로 찾아보는 것이므로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이럴 때마다 '왜?'라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배우고 익힐 때 진정한 공부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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