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타치는 권작가 Sep 20. 2019

살 좀 쪄라는 말은 무례한 줄 모르는 당신에게

몸무게 57kg인 30대 마른 남자입니다

169cm에 57kg. 내 키와 몸무게다. 나는 30대 초반의 남자이다. 키가 작은 편이긴 하지만 그렇게 미울 정도로 작게 보이진 않는다. 문제는 몸무게다. 내 몸무게가 몇인지 알게 된 사람들, 특히 여성분들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진짜 말랐다."

"남자가 돼가지고 60kg도 안 넘냐?"

"내랑 얼마 차이도 안 나네."


나를 보고 쯧쯧하며 혀를 차기도 하고 너무 말랐다며 혐오스러운 눈빛을 쏘는 사람도 있다. 같은 말들이 반복되다보니 듣기가 싫었다. 굳이 솔직하게 몸무게를 밝혀서 허약체질의 남자로 보이기 싫었다. 키는 169cm라고 말했지만 몸무게만큼은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61kg으로. 일단 61kg이라고 말하면 앞자리가 6이라서 그런지 전처럼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진 않다. "그래도 60kg은 넘네."라고 말하며 그나마 남자취급은 해준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이다. 이런 몹쓸 체질때문에 평생을 마르게 살아왔다. 365일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지 몰라도 당사자인 나는 살이 안 쪄 괴롭다. 살 안 찌는 체질이 여성에게는 좋을 수 있겠지만 남자에게는 좋은 체질이 아니다. 넓은 어깨를 가진 듬직한 체격이 남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데 마른 나는 언제나 무시받기 일쑤였다. 먹어도 안 찌는 것은 건강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게 아니다. 먹으면 찌고 안 먹으면 빠지는 게 몸이 정상인적 상태라 할 수 있는데 아무리 먹어도 안 찐다는 것은 몸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살 찌우려고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살을 찌우고 싶었다. 마른 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껏 살을 찌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봤다. 알아보니 마른 사람이 살을 찌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헬스를 해서 근육량을 늘려 몸을 불리는 것이 다부진 체격을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헬스장을 다니며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만큼이나 영양섭취가 중요하다고 해서 밥도 잘 챙겨먹었다. 많이 먹었다. 정말 배터지게 먹었다. 하루 3키는 기본이고 끼니 중간중간에도 쉬지 않고 먹었는데 하루 평균 6끼를 먹었다. 배가 부르고 헛구역질이 나오는데도 입 속으로 음식물을 우겨넣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올라올 것 같아도 억지로 먹고 또 먹었다.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고 참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얘기하지만 반대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토할 것 같은데도 억지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그 고통, 안 겪어본 사람은 진짜 모른다.


계란을 갈아마신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갈아마시는 게 흡수가 더 잘된다고 해서 우유, 바나나와 함께 삶은 달걀을 믹서기에 갈아서 마시곤 했다. 지금 먹으라고 하면 못 먹겠지만 그때는 살만 찔 수 있다면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직 살 찌우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운동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난 후에 몸무게를 재봤다. 무려 5kg이나 늘어있었다. 처음으로 60kg을 돌파했던 때라 기쁘기도 했지만 문제는 맨몸을 보면 근육 덕분에 몸이 제법 탄탄해보였지만 옷을 입으면 여전히 말라보인다는 점이었다. 벗고 다닐 수도 없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무리 먹어도 안 쪄요

사람들은 나에게 조언이랍시고 자신만의 살 찌는 노하우를 알려준다. 밤에 라면을 먹고 자라, 기름진 음식 많이 먹어라,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라, 술 많이 마시면 살이 찐다, 살 찌는 한약 먹으면 효과가 있다 등등 특별할 것도 없는 비슷한 이야기들이다. 나도 다 안다. 그런 방법들 왜 안 해봤겠는가. 실제로 다 해봤다. 하지만 안 찌는 체질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들이었다.


나 되게 많이 먹는다. 지인들과 식사를 하면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랄 정도로 많이 먹는다. 그런데도 살이 붙지 않는다. 소화기관이 약해서 먹는 만큼 영양분의 흡수가 안 되기 때문이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거나 밤 늦게 라면을 먹고 자는 것도 소용없었다. 위장이 약해서 많이 먹고 자면 다음 날 속이 더부룩하고 안 좋아 아침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오히려 역효과다. 위장이 안 좋으니 술을 못 마시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살찌는 한약도 먹어봤다. 하지만 식욕을 돋우게 할 뿐 체중증가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살이 잘 찌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노하우일 뿐이었다.


결국 포기했다. 나는 몸이 마른 사람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주위 사람들도부터 많은 말을 들어야 했다.


"살 좀 쪄라."

"남자가 돼가지고 몸이 이게 뭐냐."

"왜 이렇게 말랐어? 바람에 날아가겠네."


이런 말, 말, 말들 때문에 그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사람들은 모른다. 살쪘다는 말은 실례인 줄 알면서 말랐다는 말은 무례한 줄 모른다. 살을 찌우려는 사람보다 빼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과 비만이 건강을 망친다는 사회적 우려 때문인지 뚱뚱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말을 못하지만 그에 비해 마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쉽게 신체에 대해 평가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 없으니 스트레스 안 받으려면 그러려니 하고 흘려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그동안 쌓였던 나의 울분을 토해내고 싶다.


여자라고 해서 다 날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남자라고 무조건 건장한 체격을 가져야하는 건 아니다. 뚱뚱한 사람도 있고 날씬한 사람도 있다. 물론 날씬한 여자가 아름답고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멋있어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사람은 다 다르다. 성격이 다르듯 외모도 다르다. 건장한 체격을 멋진 남자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지적을 하는 건 결코 올바른 언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살 좀 빼라는 말이 기분 나쁘다면 살 좀 쪄라는 말도 그만큼 듣기 싫다는 것을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살 안 찌는 체질이 부럽다며 자신과 몸을 바꾸자는 그런 되지도 않는 농담은 삼가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한 마디 덧붙인다.

"진짜 바꿔줄 거 아니면 제발 좀 닥쳐주세요.^^"


요즘은 누가 나보고 말랐다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마른 사람도 있고 뚱뚱한 사람도 있고 그런 거지요. 껄껄껄"


겉으론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출렁거리는 니 뱃살이나 빼고 얘기하시지^.^ㅗ"

 



다양성이 인정돼야 좋은 사회가 된다. 직업, 취미, 가치관, 생활방식 등등 다양성이 인정되고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해줄 때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외모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나와 같이 마른 사람들에게 '남자는 마르면 안 된다.', '넓은 어깨와 건장한 체격을 가져야 한다'라는 식의 획일화된 기준을 강요하지 않길 바란다. 키가 큰 사람이 있으면 작은 사람도 있다. 뚱뚱한 사람이 있으면 마른 사람도 있다. 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세상의 기준에 벗어난 사람이 아니다. 틀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 남의 몸에 그만 좀 관심 가져주시고 신경도 좀 꺼주시길 바란다. 당신이 소중하듯 이런 나도 소중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술을 못 마시니 손해 볼 일이 많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