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아침, 머뭇거리다가 결국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엄마, 사실은 저번 주에 산 신발 두 켤레가 둘 다 안 맞아. 막상 나가서 신고 보니까 약간 크네. 이미 택도 잘랐고 밖에서 신어서 더러워졌는데 어떡하지? 스트레스 받아 미치겠네."
엄마가 말했다.
"괜찮다, 엄마도 그런 적 얼마나 많은 줄 아나? 이거 봐라. 얼마 전에 맞춤으로 해서 산 20만 원짜리 구두인데 안 맞아서 신지도 못하고 놔뒀다이가. 어디 이거 뿐이가. 앞전에도 사놓고 신지도 못한 거 수두룩했다. 신발뿐만 아니고 옷도 그런 거 많다."
그러곤 말을 이었다.
"뭐하러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노? 몇 백 만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봤자 고작 10~20만 원인데. 스트레스 받아서 몸 나빠지면 약값이 더 들어간다. 그냥 똑같은 거 새로 하나 산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당장 사라. 엄마가 카드줄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엄마가 신발을 사주겠다고 해서 같이 집을 나섰다. 라코스테에서 흰색 스니커즈를, 밀레에서 운동화를 구입했다. 며칠 집에 모셔놨다가 그 다음 주말에 라코스테 신발을 먼저 신고 나갔는데 매장에서 신어볼 때는 맞는 것 같더니 막상 신고 나가 몇 걸음 걸어보니 조금 헐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신어봐도 기분 좋게 신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택을 제거한 상태였고 밖에서도 신었기 때문에 교환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날 바로 중고사이트에 판매글을 올렸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 산책을 나기기 위해 밀레에서 산 운동화를 신고 나갔는데 이 신발도 희한하게 매장에서는 딱 맞는 것 같더니 밖에서 신고 걸어보니 사이즈가 약간 큰 듯했다. 이 신발도 택을 제거한 상태였기 때문에 역시나 교환은 불가능했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바로 전 날에도 라코스테 신발을 성급하게 택을 뜯고 밖에서 바로 신는 바람에 교환을 못하게 됐는데 이번에 또 똑같은 일이 발생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 처음 그랬으면 두 번째는 신중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소중한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마냥 길바닥에서 애꿏은 땅만 발로 내치라며 짜증이란 짜증은 있는대로 다 냈다. 그럴 만도 했는 게 평소 신발을 잘 사지 않는다. 옷은 자주 사지만 신발은 일 년에 한 켤레 살까말까 할 정도로 거의 안 사는데 그렇다보니 어쩌다 산 신발이 안 맞으니 열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집에 들어와 엄마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게 된 것이다.
처음엔 엄마가 신발을 사주고도 기분이 안 좋아할까봐 말을 안 하려 했는데 말하고 나니 얘기하길 잘했다 싶었다. 엄마랑 얘기하고 나니 금세 기분이 풀렸다. 엄마도 그랬다고, 비싸게 산 거 안 맞아서 못 신게 됐을 때 남주기는 아깝고 눈에 보이니까 짜증은 나고 해서 검은 봉지에 꽁꽁 싸매서 그대로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적도 있다고 했다. 신발장에 엄마가 사놓고 신지도 못한 수많은 구두를 보면서 엄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내가 신발 두 켤레 못 신 게 된 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두 켤레 다 그렇게 많이 큰 것도 아니었는데 워낙에 내가 성격이 예민하다보니 민감하게 느꼈던 것도 같았다.
'그래 까짓 거 새로 하나 사면 되지, 뭐. 돈 몇 푼 한다고.'
엄마와 대화를 하고 난 후 편하게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이틀동안 명치가 아플 정도로 신경을 쓰곤 했는데 엄마의 경험담을 듣고 나니 마치 씻은 듯이 나았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정도로 내 마음은 개운해졌다. 신발을 신다가 영 불편하면 그냥 버리자는 마음으로 편하게 생각하고 다시 신발을 신어봤더니 전처럼 그렇게 짜증이 나지 않았다. 생각의 차이가 참 크다는 걸 느꼈다. 엄마의 경험과 지혜가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엄마는 항상 내게 말한다.
"엄마는 이제 꺾어진 인생이여. 나이든 사람이 뭘 알겠노. 젊은 사람한테 배워야지."
이렇게 말하며 항상 자신을 낮추고 아들인 나를 높여준다. 그래서 스마트폰과 같이 모르는 게 있으면 잘 알려주려 노력한다. 항상 그렇게 내가 알려주고 가르쳐줬다. 이번에는 내가 엄마에게 배웠다. 아무리 나이든 사람이라고 해도 엄마의 경험과 연륜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작은 치수로 똑같은 신발을 하나 더 사면 곧바로 해결될 문제였다. 고작 돈 몇 푼 잃는다고 해봤자 건강을 해치는 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신발을 잘못 산 게 실패라 생각했지만 엄마의 경험과 나름의 인생철학이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실패 속에서 배울 수 있었다. 엄마에게 감사하다.
밀레 운동화를 신으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발 볼이 좁아서 약간 헐렁한 감은 있지만 그 빈 공간이 엄마의 사랑으로 가득 차있는 것 같아 내 발에 꼬~옥 맞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