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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권작가 Nov 05. 2019

혼밥, 혼영부터 혼술까지

뭐든 혼자서 잘한다. 혼자 밥 먹는 혼밥, 혼자 영화보는 혼영부터 혼자 술 마시는 혼술까지 일상의 대부분을 혼자 보낸다. 이것저것 혼자 하다보니 혼자서 하는 것도 제법 익숙해졌다.


혼자 밥먹기

2년차 자취생이다. 혼밥은 나에게 흔한 일상이다. 아침, 저녁으로 집에서 혼밥하고 점심도 집에 가서 혼밥하고 직장으로 복귀한다.(직장에서 집까지 차타고 5분거리이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다. 주말이면 혼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부산 시내를 활보하기 때문에 토, 일 할 것 없이 대부분 밖에서 혼밥을 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나름의 철칙이 있다. 일반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는 식당 입구를 등지고 앉지 않는다.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입구를 등진 채 등을 보이며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을 보면 왠지 좀 쓸쓸해보인다. 어깨가 축 처져보이곤 한다. 밥을 혼자 먹든 같이 먹든 똑같이 돈 내고 먹는 밥인데 쭈구리처럼 보이며 밥을 먹기는 싫었다. 당당하고 맛나게 먹고 싶었다. 그래서 무조건 사람이 들락날락거리는 입구쪽을 마주보며 앉는다. 안쪽 자리가 없을 땐 입구 바로 앞에라도 앉는다. 민망할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다. 결코 시선을 떨구는 법이 없다. 오히려 입에 밥을 한 숟갈 넣고 난 후 바깥 풍경을 보며 즐기기까지 한다. 입 안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고슬고슬한 쌀밥과 함께 여유를 음미한다.


가끔은 의자에서 양반다리를 하기도 하고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먹기도 한다. '혼자라고 해서 주눅들 필요가 뭐가 있냐?'라는 나름의 저항이 담긴 행동이다. '아저씨처럼 보일려나?'싶을 때도 있지만 그다지 아무도 신경 쓰는 않는 눈치다. 그냥 내가 신경 쓰여서 그러는 거다.


혼자 영화보기

갈수록 1인가구는 늘어가고 있고 이러한 추세에 맞춰 혼자서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도 많이 생기고 있다. 혼자 밥 먹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혼자 영화보기 정도는 해야 혼자족이라 칭할 만한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혼자서 보러 간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편 정도 본다. 혼밥과 마찬가지로 혼영할 때도 나름의 철칙이 있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시간대에 영화를 본다. 주로 조조영화를 본다. 이유는? 혼밥과 달리 혼영을 할 때면 자꾸만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는 초창기때부터 그랬다. 영화관에 혼자 입장할 때면 괜스레 사람들 눈치가 보였다. 영화관을 출입하는 것이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앉아있을 때다. 다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영화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는데 나혼자 멍하니 영화 전에 하는 광고를 보고 있으면 조금 뻘쭘하다. 더군다나 양 옆으로 커플이 앉아있을 때면 혼자라는 초라함과 뻘쭘함은 화룡점정을 찍는다. 그다지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듯 혼자라는 생각에 내가 먼저 눈치를 보고 의식을 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익숙해지진 않았다.


아침 일찍 영화관에 가면 사람이 많지 않다. 있다고 해도 혼자 온 사람들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나혼자 왔다고 해서 뻘쭘해할 필요가 없다. 영화관을 출입할 때도, 영화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며 앉아있을 때도 뻘쭘해할 필요가 없다. 아침 일찍 영화를 보러 갈 때의 장점이 하나 더 있다. 남들 다 자는 주말 아침에 나는 일찍 나와 영화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점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남들 일하는 평일에 영화를 볼 때면 기분은 더욱 짜릿하다. 때문에 야간근무를 한 다음 날 일찍 퇴근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가끔은 평일에 하루 휴가를 내고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혼자 조조영화를 보며 영화를 즐기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 느낀 점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사람이 없으니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 영화에 대한 타인의 생각에 대해서도 궁금하지만 나에게 말을 해줄 사람도 없다. 코미디 영화를 볼 때면 웃긴 장면이 나왔을 때 함께 박장대소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 점도 아쉬울 때가 있다. 뭐 어쩌겠는가. 감수하면서 본다. 즐길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려 한다.


혼자 밥먹기 레벨1~9

혼자 밥먹기 레벨이라는 것이 있다. 레벨1부터 레벨9까지 있다. 단계별로 보자.


레벨1. 편의점

레벨2. 학생식당

레벨3. 패스트푸드점

레벨4. 분식집, 김밥천국

레벨5. 중국집, 냉면집 등 일반음식점

레벨6. 맛집

레벨7. 패밀리레스토랑

레벨8. 고기집, 횟집

레벨9. 술집


레벨1에서 레벨5까지는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혼밥이다. 다소 시시한 감이 있다. 레벨6까지는 나도 해봤다. 레벨7인 패밀리레스토랑과 레벨8인 고기집, 횟집은 안 해봤다. 사실 레벨8 같은 경우는 횟집은 혼자 먹기에 양이 많고 고기집도 3인분 이상은 시켜야 하니 역시 양이 많아서 소식가인 내가 혼자 먹기엔 무리다. 마지막 레벨9는 술집에서 혼자 술먹기인데 사실 이건 해봤다. 내가 첫 혼술을 한 곳은 글로벌하게도 한국이 아닌 외국이었다.  


오사카에서 혼술을 

작년에 일본 오사카로 혼자 2박 3일 여행을 간 적 있었다. 날씨가 쌀쌀했다. '일본 술하면 역사 청주(사케)지.'하는 생각에 술집을 검색했다. 블로그에서 찾아보니 사람들이 많이 가는 일본 술집이 있었다. 블로그 게시글이 많은만큼 한국 사람이 많을 것 같았다. 웬만하면 한국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다른 술집을 찾아봤지만 딱히 괜찮은 싶은 곳을 찾지 못했다. 결국 블로그에서 봤던 술집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 자신감있게 문을 열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요리를 하고 있는 직원이 1명 있었고 바로 앞에는 바처럼 마주보며 앉는 좌석이 있었다. 양곱창 집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런 식으로 테이블이었다. 다 앉으면 12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빈자리가 있어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술과 안주를 주문한 후 주위를 둘러봤는데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술을 많이 하러 온다는 블로그 포스팅과 달리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온통 함께온 사람들, 그것도 커플 천지였다. 일본 사람들이었으면 상관없었을 텐데 들리는 건 한국말밖에 없었다.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이미 주문을 마쳤는데 어쩌랴. 나만 즐겁게 먹고 마시면 될 거라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따끈따끈한 청주와 함께 안주 세 가지가 나왔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그 몇 분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상당히 뻘쭘했다. 술과 안주가 나오기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별 반 다를 게 없었다. 입에 술을 한 잔 털어넣고 안주를 먹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할 게 없었다. 유일한 대화상대는 휴대폰이었는데 혼자 폰을 보고 앉아있는 것도 불쌍해보일 것 같아 그냥 술과 안주만 쳐다보고 있었다. 발가벗고 있는 것마냥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고 차마 옆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괜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먹고 있는 안주가 목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블로그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수집을 위해 술과 안주 사진을 찍으며 할 건 다했다. 옆에서 누가 보든말든 어차피 한 번 보고 안 볼 사람이라 생각하고 요리조리 사진을 찍었지만 찰나의 창피함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혼자서 뭔 궁상인가 싶기도 했다.

내가 혼술했던 오사카 술집 미즈카케차야


쉬지 않고 먹고 마시며 급하게 술집을 빠져나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술때문에 아니었다. 혼자있을 때의 그 창피함이 확 올라와서였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으면 뭔가 낭만적이라 생각했는데 낭만은 개뿔, 개도 안 물어갈 낭만이었다....ㅜ.ㅜ


혼술할 때 무엇을 하면 좋을까?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글로벌했던 나의 혼술기행기. 생각할수록 이불킥하게 만드는 기억이지만 한 번 더 혼술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이번엔 해외말고 한국에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혼술하기 좋은 술집이 제법 나온다. 물론 혼술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다시 한 번 더 한다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술과 안주만 가지고는 무료함과 뻘쭘함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혼술 하면서 무얼 해볼까?


특별한 건 없는 듯하다. 아무래도 나는 얘기하는 걸 좋아하니 지인과 전화 통화를 하며 술을 마시면 좋을 것 같다. 한 시간 넘게 재잘재잘거리며 대화할 수 있는 지인이 있어서 충분히 가능하다. 다른 방법으로는 폰으로 영화보기? 영화보면 심심하진 않을 거 같은데 왠지 그런 나를 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쓰일 거 같다. 가게 사장님이 말이라도 걸어주면 좀 나으려나? 역시 어렵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술이 몸에도 안 좋은데 차라리 그 돈으로 밥이나 사먹는 게 낫겠지?


앞으로도 나의 혼밥과 혼영은 계속 될 것 같다. 애인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올해는 물 건너간 것인가? 아무튼 뭐, 혼자라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번엔 혼자서 어떤 맛있는 걸 먹어볼까' 하는 재미는 있다. 혼밥하고 혼영하는 혼자족 여러분! 눈치 보지 말고 맛있게 밥 먹고 재미나게 영화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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