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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맛

여름방학의 맛

by Taei

어렸을 때 여름방학이면 다섯 살 많은 언니와 함께

외할머니 댁이 있는 논산으로 향했다.


엄마의 부탁으로 언니는 기차와 버스를 타고

어리바리한 동생 하나를 외가에 데려다주고는,

다음 날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렇게 언니의 '임무 수행'이 끝나면

짧지만 강렬했던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곤 했다.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올해 여름,

우리는 그때처럼 기차에 몸을 싣고 다시 논산으로 향했다.

차로도 자주 가봤지만,

기차는 언제나 잊고 있던 설렘을 다시 끌고 오는 마법이 있다.

덥고 땀은 흘렀지만,

여름방학, 외가, 자매, 기차 — 이 조합은 여전히 즐겁다.




논산에 도착해 반월소바에서

시원한 냉메밀과 돈가스로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늘 품절이라 애태웠던 화지시장 찹쌀떡도

드디어 손에 넣었다.


논산역에서 외가댁까지 걷는 길,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풍기던 여름날 특유의 냄새,

혹은 외할머니 댁 마당에서 들리던 매미 소리 같은

장면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튀어나왔다.


자매는 걷고, 웃고, 끊임없이 추억을 나눴다.



덥고, 다리 아프고, 땀도 흘렀지만

모든 순간이 좋았다.


길가의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나란히 눕거나,

잠시 털썩 앉아 쉬는 순간마저

이 여행은 완벽하게 완성됐다.

시골에 오면 용돈이 생기곤 해서

어릴 적 자주 들르던 구판장에 들러보려 했는데

올해 그 자리에 있던 가게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앞 놀이터 벤치에 앉아

준비해 간 새우깡 봉지를 뜯으며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살짝 묻어두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연산역까지,

오롯이 걸음으로 채운 5시간의 논산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새벽 기차를 타고 떠나

밤 기차로 돌아오는 여름.


땀이 나도, 다시 떠나고 싶은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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