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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Dec 12. 2019

왜 이렇게 아저씨가 돼버린 거야?

밤치기 - 나의 전성기는 이제 끝이 났다

  겨울은 유난히 해가 짧다. 6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늘은 이미 한밤중이다. 후덥지근한 사무실에 있다 나오니 차가운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힘껏 공기를 들이마시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들여 마신 공기를 뱉어내니 새하얀 김이 연기처럼 뿜어 나온다. 내 몸이 이토록 뜨겁다. 

  혹시나 누군가 같이 술 마셔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둘러보니 다들 어디론가 바삐 사라지는 중이다. 하루 종일 기다려온 퇴근이니 주저할 이유가 없겠지. 



  술이 어울리는 겨울 저녁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출판단지에는 술집이 없다. 문학이 있는 곳에 술이 없다니. 술집 대신 밤새 빛을 밝히는 도서관이 있으니, 참 한결같은 곳이다. 

  책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술을 싫어하는 것도 아닐 텐데 술 한번 마시려면 자유로를 달려야 한다. 출판단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근과 동시에 출판단지 셔틀버스 혹은 2200번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최소 30~40분은 자유로를 달려야 하고 차라도 막히면 1시간 이상 버스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니 서울에 도착하면 이미 흥은 깨지고 만다. 흥은커녕 몸이 지쳐 서둘러 집에 가기 바쁘다. 그래도 몇몇은 아쉬운 마음에 술을 마시지만 회사에서 들고 나온 분노와 고뇌, 슬픔, 욕망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잃어버린 술맛은 대체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할까? 그래서 내가 쓸데없는 책임감을 느낀다. 나라도 술집을 차려야 하는 걸까? 불쌍한 출판인들을 위해? 그런데 막, 대박 나는 거 아니야?  

  몇 년 전 회사를 때려치우고 부산으로 내려가 닭발 가게를 차린 친구 녀석이 있다. 그 친구는 모두의 걱정을 비웃으며 성공했고, 당당히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친구 녀석의 가게에서 팔리는 닭발이 하루에도 수백 개라고 하니 닭의 인생은 무상하지만, 인간은 역시 인생 한방이다. 나라고 출판단지의 대박집 사장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만화 심야식당의 주인장처럼 밤이 새도록 출판인들과 출판계 뒷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책 만드는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인데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천일야화가 별거겠냐. 


  오뎅탕을 기가 막히게 만드는 선술집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그 추억의 장소에서 한 때 정종을 즐겨 마셨다. 추운 겨울이 오면 약속이라도 한 듯 친구와 그곳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밤이 늦도록 술을 마시고 술이 우릴 마시고 그렇게 정종처럼 달착지근한 밤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그 선술집이 사라졌다. 그렇게 맛있는 오뎅탕을 만드는 가게라면 결코 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문을 닫았다. 옛 친구는 그 술집의 사라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정종 땡기는데." 

  "나 요즘 와인 마셔."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나도 맥주를 마시는 중이긴 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렇게나 술을 마시던 때가 있었는데 술 마시는 것도 전성기가 있는지, 나의 전성기는 이제 끝이 났다. 예전처럼 마셨다간 생명이 위태로울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그저 맥주를 홀짝이는 정도다.  


  "뭐야 고작 한 캔 마시는 거야?" 


  술 좀 마시던 시절의 내가 과거에서 찾아온다면 코웃음 치며 비웃겠지. 


  "왜 이렇게 아저씨가 돼버린 거야? 과거의 나를 기억하라고!"

  “미래의 나를 생각해서 작작 좀 마셔주렴. 넌 곧 위염에 걸릴 예정이거든.”




* 상단 이미지는 영화 <밤치기>의 한 장면이다. 영화의 강렬한 첫 장면은 찾을 수가 없었고 대신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 없는 남자 주인공 박종환의 사진(출처_네이버)을 찾아왔다. 

 긍정적인 의미로 무척이나 신선하고 흥미로웠던 영화는 인상적인 술자리 장면을 보여준다. 여성 캐릭터의 강렬한 구애가 돋보이는 첫 장면이 인상적인데, 역시 사랑은 쟁취하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역시 사랑의 시작에는 술만 한 것이 없다. 흔한 진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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