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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Jan 01. 2021

마누라 속이기 season 1-3

계획 없이 떠난 여행에서도 계획한 여행만큼 얻는 게 많다

계획 없이 떠난 여행에 '이리오너라~' 식으로 지나가다 들른 시골 호텔에서 1박을 하며, 삼겹살도 구워 먹고 숲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가뿐히 잠을 자고 일어나 어제와 달리, 야 이젠 가보자! 하는 마음에 2일 차를 떠났다.


한참 도로로 진입해 달리는데...


역시 여자들의 감이란 무서운 것이 일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집이냐고 하면 뭐라고 하지...

하며 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뭐해? 혹시 밖에 싸돌아 다니는 거 아이가?"


쿵!

(나의 마음이 떨어지는 소리)


"뭔 소리야, 그냥 집에 얌전히 있는데..."


"그래?...(정적).. 이상한데...

그럼 지금 모습 사진 찍어서 퍼뜩 보내봐라."   

엇! 이건 장기로 치면 "장군!"아닌가. 아... 젠장...


"딴 가시나랑 있는 거 아이가? 내는 못 속인데이~"

"아이, 사진 찍어 보내라메... 찍는 시간도 있어야지. 참."

나는 사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래 보낸 사진)


나는 평소에 아내에게 이정재가 나랑 동갑이라고 하며 닮았다고 주장해왔다.


"푸핫! 내 없으니까 약 먹을 때 됐네~ 헛소리도 하루 안 들으니 그립네~ 언능 씻구 아침 먹으라~"


나는 "멍군!"을 속으로 부르며 위기를 모면했다. 

아내에게 다른 얀테의 법칙들을 말하고 싶었다.


'3.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2일 차는 어제와 달리 그저 그랬다.


한적한 시골 마을 도로를 달리다 보니 한가로움만이 느껴지는 목가적인 풍경이 지나쳐갔고, 옘틀란드 주(Jämtland län)의 주도 외스테르순드(Östersund)에 들러 점심을 먹고 가는 길에 아무 데나 호수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면 들리기로 했다.

어렸을 때 봤던 '초원의 집'에나 나올 법한 스웨덴 시골 마을 풍경


스웨덴 중부의 가장 큰 호수인 Storsjön (big lake라는 뜻)를 따라가다가 무작정 호수로 향하는 비포장도로로 들어갔는데, 정말 시골인지 집도 별로 없고 사람도 없었다. 다행히 트랙터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 잠깐 요기 대고 호수 좀 구경하고 가도 되냐고 하니, 자기 집 입구니 괜찮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이곳은 Hackås라는 아주 작은 마을로, 숨겨진 보석 같은 마을이었다.

호수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넓은 목초지에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 오라니까 잘도 온다.

이 말들은 모형 아닙니다. "하늘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면 되냐!" 


말들과 이것저것 얘기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좀 더 호수 쪽으로 내려가 보았다. 명불허전이라고 했던가, 'big lake'라는 이름이 왜 지어졌는지, 그리고 왜 호수를 스웨덴 사람들이 사랑하는지....  넓디넓은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네이버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Hackås 마을에서 텐트 치고 잘 수만 있다면... 하는 꿈도 꿔봤지만, 그건 접었다.

야, 이게 호수랍니다. 물도 참 먹어도 될 정도네요.



차는 달려 베스테르보텐주(Västerbottens län)에 들어섰다. 표지판을 보니 '라플란드(Lappland)'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전라도를 호남지방, 경상도를 영남지방이라고 하듯이, 예전에 순록을 키우고 살던 Lapp족(스웨덴에서는 Sami족이라고 부름)의 땅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라플란드는 스웨덴 이외 핀란드, 러시아까지 걸쳐있는 지역이다.


초등학교 때 가장 많이 본 책 중에 하나가 지도책인 '사회과부도'였다. 책을 보다 보면 내가 세계여행을 한다는 착각도 하고,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보다 보니 웬만한 지명은 다 알게 됐는데 라플란드도 그중 하나였다. 그래도 들어본 지명이 나왔다는 생각에 차에서 내려 한 번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나무도 만져보고 돌들도 주워보았다. 확실히 북쪽이라 나무나 땅이 달랐다. 라플란드라고 하면 한국에선 핀란드의 산타마을로 유명한 Rovaniemi를 생각하겠지만, 엄연히 스웨덴 북부도 포함된다. 또 '겨울왕국'으로 칭할 정도로 북극권에 가까운 지역이다.


Lappland를 본 순간, 고향에 온 느낌이 들었다. 순록들아 어디 있냐~ 엉아 왔다~
엇, 이것들이... 진짜 왔네. 중간중간에 순록 떼거리가 지나가는 모습을 종종 본다.




잠깐 시외를 갈까 하고 떠난 여행이 벌써 4번째 주(행정구역)를 들어서며 북극권 (북위 66.5도 이상)에 근접하고 있다. 여행은 인생과 같다고 하더니, 11년 7개월을 경찰로 전직했던 나도, 지금 외교부에서 그만큼을 넘어 13년째 근무하는 것처럼(사진을 찍은 Dorotea Kommun은 64° 16′ 0″ N 위치).


달리는 도로에서 바라본 풍경은, 어린 시절 글자로 밖에 볼 수 없었던 꿈들이 내 눈으로 와 부딪치는 것 같았다. 그러기에 오늘 Hackås에서 그리고 라플란드에서 나무와 돌과 물들을 천천히 직접 만져보았던 느낌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계획 없이 떠난 오늘, Storsjön의 푸른 물과 라플란드의 숲을 만난 것처럼, 내일은 그리고 앞으로의 내 인생은 무엇을 또 얻을 수 있을까. 당장 오늘 저녁도 기다려지면서 나는 더 북쪽으로 향했다.


202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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