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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선물 받은 어느 날

하찮기는 해도 부질없지는 않아

by 티제이

에필로그


한국에 돌아온 지 1년이 채 안 되었다.


갈 줄은 알았으나, 그와 함께 하기 위해 결혼해서 베이징까지 갔으나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신혼생활이었지만, 나름 리듬감을 찾아가던 중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왔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올 줄은 알았으나, 언제인지는 귀신도 몰라서 터무니없이 갑작스레 돌아왔다.

코로나도 있었고, 그전에 이미 남편의 발령 건이 있었고, 그 전전에 굳이 신랑이 발령을 신청한 여러 이유 중에는 나도 있었다.

그러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단 한 톨의 준비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데자뷔처럼 겹쳤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다람쥐처럼 글을 모으고, 생을 또 꾸렸다.

서울에서 프리랜서로 소소한 수익활동을 시작했다. 재취업 대신 글을 쓰기로 해서, 반년 정도 글을 모아 이번에 브런치 북으로 내었다. 남들은 서 너 권도 넘게 내는 브런치 북이지만, 직업전선에 포함되지 않는 삶을 처음 겪으며 글을 썼던 나로서는 꽤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다.

목차를 짜고 글을 모으면서 생각했다. 와, 진짜, 어설프구나, 하고.

미셸 곰브로비치의 소설 [페르디두르케]의 주인공 유조는 '미성숙'에서 도망치려 애쓰지만, 끊임없이 유년기와 궁뎅이의 세계로 붙잡혀 끌려간다. 나도 울퉁불퉁함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이렇게 울퉁불퉁한 모과 같은 브런치 북이 나와버렸으니.

<가을 모과> 문태준

울퉁불퉁한 가을 모과 하나를 보았지요
내가 꼭 모과 같았지요
나는 보자기를 풀듯
울퉁불퉁한
모과를 풀어보았지요
시큼하고 떫고 단
모과 향기
볕과 바람과 서리와 달빛의
조각 향기
볕은 둥글고
바람은 모나고
서리는 조급하고
달빛은 냉정하고
이 천들을 잇대서 짠
보자기 모과
외양이 울퉁불퉁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나는 모과를 쥐고
뛰는 심장 가까이 대보았지요
울퉁불퉁하게 뛰는 심장 소리는
모과를 꼭 빼닮았더군요

모처럼 연이 닿은 새로운 분께 시를 선물 받았다. 그렇구나.

모과였구나.


생으로 먹기에는 너무 시고 떫은 모과, 단 한 번도 좋아라 한 적 없었는데. 내 글이 모과라니.. 모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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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 글은 조잡하고 조급하고 모나서, 심지어 울퉁불퉁한 것 까지 빼닮아 <가을 모과>의 '모과'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못난이 모과가 세상 부끄러워 한창 고민하다가,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다는 생각에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돌덩이 같은 모과 쓸 데도 없을 것 같지만, 어쩌면, 감기에 자주 걸리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보았다. 비록 향에 비해 맛은 정말 먹을 게 못 되지만, 꿀과 설탕을 잔뜩 치면 또 따끈하게 마실만 하다고 어설프게 우겨봐도 괜찮겠지. 가깝지만 먼 중국에서 온 작고 찌글찌글한 모과.


중국에서의 경험은 정말이지 눈물 쏙 빠지도록 매웠다. 밥도 매웠고, 공기도 매웠다.

매운 와중에 산도 가고 부부싸움도 하고 베이징덕도 자주 먹으러 갔다. 덕분에 이제는 마라탕도 찾아 먹는 위인이 되었다. 화장실은 자주 가겠지만. 이해할 수 없는 문화를 마주칠 때마다 방지턱 앞에서 속도를 줄이듯 멈칫했던 기억들은 어느새 저 뒤꼍으로 넘어갔다. 중국은 이제 어디 가서 꽤 아는 체할 만한 곳이 되어 버렸다.

낯설었던 시간이 흐르고, 익숙한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삐걱거렸던 삶은 중국으로 글 속에 묶어놓고 이제는 다음 걸음을 옮길 순간이다. 경험은 나를 성숙하거나 무디게 만들지 않았다. 나를 돌아보게 한 건 경험보다는 글쓰기였던 것 같다.

서울에서의 삶이라고 빼어나게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라서,


앞으로도 계속 글이 써질 것 같다.


부디 다음 글은 모과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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