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 하는 결혼 생활 - 내 어머니인데 친하게 지내주면 안 돼?
결혼 후, 내 가족은 순식간에 커졌다.
남편과 신혼을 즐길 틈도 없이,
친정과 시댁 모두 우리의 결혼생활에 깊숙이 발을 들였다.
둘이 행복하기 위해서 한 결혼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둘만의 오붓한 시간은 점점 사라졌다.
점차 내 세계에 시어머니라는 ‘제3의 중심축’이 생겼다.
남편과 나 사이에,
그의 어머니가,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우리 부부사이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단순한 친근함이라 여겼다.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알았다.
이 관계가 나와 아들을 향한 호의만이 아니라,
부부 관계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구조라는 것을.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이미 남편과 통화를 하셨더라도 내게 전화를 거셨다.
왜 둘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셨다.
부부싸움이 있어도, 남편과 말다툼을 해도,
시어머니와는 웃으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야 하는 것.
심지어 우리 부부의 사소한 냉기마저,
시시콜콜한 일들마저,
시어머니가 중재하려고 하시는 묘한 삼각 구도가 굳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이상한 꿈을 꾸었다.
안방에 나와 남편, 둘만 있어야 할 그 공간에
나 몰래 파티션 너머
다른 사람이 그림자 형태로 지내고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지?
얼굴을 확인하려 했으나 이상하게 어두워 볼 수가 없었다.
그 이방인의 존재에 화들짝 놀라
신랑 얼굴을 돌아봤으나
그는 이상하게 원래 그런 듯 평온해 보였다.
나는 참다못해 남편에게 따졌다.
“이게 말이 돼? 셋이서 하는 결혼생활이 어딨어?
이건 사기야.”
남편은 태연하게 너 참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결혼은 원래 이런 거야.
내 일부분인데 그럼 어떻게 해?"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어쩐지 이건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내 현실의 은유 같은 꿈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결혼 후 많은 남편들은
자신의 삶의 역사를 통합하고 싶어 한다.
이제껏 가장 애틋하게 함께한 여성, 어머니.
그리고 앞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여성, 아내.
남편은 이 두 사람이,
자신을 중심으로 연결된 두 세계가
특별한 친분을 맺길 바란다.
물론, 운이 좋아 두 여성이 인간적으로 교류하며
좋은 관계를 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만남은 처음부터
서열이 정해져 있고, 목적이 분명하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그리 쉽지 않다.
남편이 아내에게
“내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건,
애정의 흐름만 놓고 신랄하게 비유하자면 이렇게 들린다.
“넌 내 인생의 동반자니까, 내 과거도 모두 공유해야지.
내 과거 여자친구들이랑도 친하게 잘 지내줘.”
대부분은 어머니를
‘전 여자친구’와 같은 범주로 생각하지 않기에,
이 비유가 맞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결혼 후에도 아들의 집에 찾아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지분을 요구하는 시어머니는,
많은 경우 아들을 자녀라기보다
남편 자리를 대신하는 ‘대리 배우자’로 바라본다.
즉, 남편 대신 다 키운 자녀인 아들을
자신의 삶 내내 함께해야 하는
정서적 동반자로 삼는 것이다.
그 방식이 ‘보살핌’을 베푸는 형태든,
요구와 통제의 형태든 상관없다.
핵심은, 아들을 독립된 존재로 받아들일 수 없어,
자신의 삶에서 놓지 않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자신의 아내와의 갈등을 불러온다.
여기에 남편이 쉽게 가세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는,
우리 사회의 유교적 문화의 잔재와
‘자아분화’ 실패라는 심리적 요인이
상호보안하며 강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부의 안방은 둘만의 공간이다.
그런데 이 문화와 심리 구조는
그 안에 제삼자가 함께 살게 만든다.
겉으로는 ‘화목’과 ‘효’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경계를 흐리고 부부의 친밀감을 갉아먹는
정신적 동거의 장치들이다.
이 장치들이 왜 위험한가?
그것은 부부의 관계를 둘 중심이 아니라
남편 중심으로 재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토대에는 두 가지 축이 있다.
하나는 유교문화가 만들어낸 가족 합일의 전제,
다른 하나는 성인이 되어도
부모와의 경계를 세우지 못하는 정서적 미분화다.
한국 사회, 특히 유교문화권에서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결합으로 여겨졌었다.
장자는 집안을 잇는 ‘기둥’이자 ‘효의 전도사’로 길러지고,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개인적 동반자가 아니라
시가 체계의 일부로 편입된다.
이 전제 속에서 “아내와 어머니가 친하면 좋겠다”는 말은
‘화목’과 ‘효’라는 명분으로 장려된다.
그러나 이는 부부 중심이 아닌
남편 중심의 관계 재편을 의미한다.
부부만의 독립적 친밀감은 희생되고,
가족 체계 속 안정된 구도가 더 우선시 된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친정엄마처럼”이라는 말 역시
이런 맥락에서 미화된다.
겉으로는 가족 화합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부부의 경계를 허무는 경계 없는 관계의 장치다.
자아분화란, 타인의 감정적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분명히 구분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건강한 경계 안에서 유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분화 수준이 낮은 사람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사고와 감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배우자와의 관계를 부모와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두 세계를 하나로 합치려 한다.
대표적인 예가 있다.
배우자가 시부모(또는 장인·장모)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하면
그 말을 곧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다.
부모에 대한 비판을
‘가족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곧바로 방어적이 되거나 배우자를 타이르려 들다가
더 큰 부부간 갈등을 불러온다.
이것은 자기 정체성과 부모의 정체성이 분리되지 않은
전형적으로 정서적 분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징후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남편이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가 ‘절친’이 되는 것을
이상적인 ‘가정의 화목’ 상태로 여기기 쉽다.
두 중요한 애정 대상이 모두 자신을 중심으로 묶인
하나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부부라는 1:1의 심리적 공간에
제삼자가 상주하는 구조이며,
결국 관계의 경계는 무너지고 친밀감은 약화된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안정기지(secure base)는,
성인이 되면 원래 배우자에게로 옮겨가며
새로운 1:1의 정서적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 전이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머니와의 유대가 결혼 후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남편은 아내와 어머니를 한 울타리 안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팀으로 묶어두고 싶어 하는데,
이는 겉으로는 ‘가족의 화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 애착 대상을 동시에 잃지 않으려는
심리적 안전장치다.
이것이 ‘두 여자의 절친’ 서사가
남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가족치료학자 Salvador Minuchin이 설명한 개념으로,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의 정서적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렇게 자란 남성은 결혼 후에도
무의식적으로 두 관계를 모두 유지하려는 시도를 한다.
아내와 어머니가 친하면,
그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잃지 않으면서도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겉으로는 ‘두 여자의 절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내를 어머니 곁에 배치해
자신의 정서적 안전망을 이중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남편 중심의 결혼관계에서
‘아내가 내 어머니와 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부부 중심이 아니라
남편 중심으로 재편된 결혼일 때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남보기는 화목해 보일지 몰라도, 이 구조가 지속되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1. 아내의 경계 침범과 부부 친밀감 약화
아내의 삶과 감정이 시댁 체계 안으로 흡수되고,
부부만의 의사결정과 정서 공간에
다른 이의 영향력이 상시 개입한다.
심리적 ‘안방’이 제삼자와 공유되면서,
비밀과 농담, 일상의 애정 표현이 줄고
정서적 거리감이 커진다.
2. 서열이 존재하는 억지 친밀
‘두 여자 절친’ 관계는 대체로
아내의 감정 노동과 희생으로 유지된다.
한쪽만 맞추는 친밀은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
권력 불균형의 산물이다.
서로 다른 세대와 가치관이
억지로 한 울타리에서 ‘화목’을 연출할 때,
그 평화는 억압과 자기 검열 위에 세워진 불안정한 평화다.
3. 흐릿해지는 배우자의 존재
아내는 ‘남편의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시가의 며느리라는 역할로만 규정된다.
이로 인해 부부간 대등한 관계가 훼손되고,
재정·양육·생활 방식 같은 중요한 결정에서도
아내의 의사가 밀려난다.
4. 내 아이에게 고통을 물려주는 정서적 독립 실패
남편이 원가족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아이도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독립을 배우지 못한다.
아들은 성인이 되어도
부모의 정서적 파트너 역할을 당연시하며
배우자에게 같은 구조를 요구하고,
딸은 결혼 후 배우자보다
시가 체계를 우선시하는 관계를 ‘정상’으로 학습한다.
경계 침범은 단발적 불편이 아니라,
세대를 타고 반복되는 정서적 종속으로 이어진다.
부부의 안방은 집 안의 한 칸이 아니다.
둘만이 공유하는 농담, 시선, 숨결,
그리고 안도감의 영역이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정서적 지지자이자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는 서로의 보호자가 되며,
삶의 진정한 동반자로 거듭난다.
그러나 그 안에 제삼자의 기대나 감정이 머무는 순간,
부부는 둘만의 리듬을 잃는다.
우리의 관계 안에 누가 있는가.
그 존재는 누구를 편하게 하고, 누구를 숨 막히게 하는가.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사랑은 힘을 잃고
그 틈은 다음 세대의 결혼 생활 속으로 스며든다.
진짜 모성애는 아들의 여자와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랑이 뿌리내릴 흙을 조용히 비워주고,
두 사람이 그 문턱을 지킬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서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 아이들은
단단히 연결된 부모를 보며
새로운 사랑과 진정한 모성애를 배울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저당 잡히지 않고
서로의 지지자이자 동반자로 걸어가는 부모를 뒤로하고,
자유로운 자신의 삶으로 신나게 점프해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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