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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자리의 법칙 2

- 고부 갈등의 시작, 몹쓸 남의 편 남편

by 파랑새의숲


내가 내 엄마로부터 경계를 세우고 독립을 하며

내 새로운 가정을 구축하는 동안,
나는 남편과 시어머니께 전적으로 의지했다.


남편은 다정했고, 시어머니는 따뜻했다.
그 따뜻함에 기대어
'드디어 새로운 내 편, 새로운 가정이 생겼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없는 자리는 언제나 위태롭다는 것을.

내가 '나를 찾지 못한 채' 어딘가에 의존하는 것은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친정에서 경계를 세우며 빠져나오자,
그 빈자리에 곧바로 시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처음에는 그 또한 도움처럼 보였다.

네가 힘들 테니 밥을 챙겨주고, 쉬라며 다독여주는 손길.
하지만 곧 그 자리는 간섭과 통제로 채워졌다.


살림을 어떻게 해야 한다,
아이는 어떻게 길러야 한다,
심지어 내 친정 문제까지 개입하며
조언을 넘어선 통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선택은 늘 미심쩍게 여겨졌고,
내 태도는 어느 새인가 유별나다는 말로 규정되었다.
언젠가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간접적인 이야기 속에서
나를 겨냥한 공격 같은 것이 이어지면서

그 따뜻하던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내게는 서늘한 칼날처럼 느껴졌다.


시댁에는 손주, 내게는 첫 아이.

그 아이를 둘러싼 애정 경쟁도 치열했고,

그 안에서 오롯하게 피해 보는 것은

한 사람과 진득한 애착을 형성해야 하는 '어린아이'였다.


나는 무엇이 문제인가 그때부터 골몰하게 되었다.

왜 이런 반복적인 '나의 자리'에 대한 침범이 일어나는 것인가.


내 성격이 이상한 건가,

우리 엄마가 이상한 건가,

시어머니가 이상하신 건가,

아니면 여자들이 이상한 건가.


오랜 시간을 관찰하고 고민한 끝에

나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러한 반복되는 '내 자리'에 대한 경계 침범과 간섭, 통제의 가장 큰 원인은 ‘나의 희미한 존재’였음을 깨달았다.

나의 자리에 ‘내’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프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나는 나의 경계를 세우지도 않았고 , 그렇게 아무런 색도 없이 나의 색을 잃은 채,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 색깔이 무엇이라고,

내 존재는 어떻게 생겼다고,

내 자리는 어디까지이며,

내 경계는 여기까지니 침범하지 말라고

한 번도 제대로 명확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엔 ‘나의 부재’, 그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가슴 아팠던 건
남편이 더 이상 내 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모녀갈등 속에서 내 손을 잡아주던 그는
시어머니와의 갈등 앞에서는
차갑게 한 발 물러서 있었다.


장모는 이방인이었지만,

자신의 어머니는 아직 자기의 일부분이었다.

그도 역시 자신의 부모에게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한 명의 '어른 아이'였을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두 명의 어른아이가 만나

미숙한 의존을 사랑이라 여기며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나가는 '부부여정'을

이제야 새로이 시작해야 함을 뼈아프게 깨달아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가족의 편에 서서,

내 자리를 더 이상 지켜주지 않으려 했다.

아마도 내가 나의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어머니와 그들의 가족에 내가 ‘편입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만 같았다.


그때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 듯했다.
외로움에 치를 떨었고, 배신감에 몸이 떨렸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 외로움은 결국
내가 내 두 발로 서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기댄 탓이었다는 것을.


엄마에게의 의존이 그랬던 것처럼,

남편에게 또는 시어머니에게의 의존은

결코 건강한 버팀목이 아니었다.


내 자리는 결국 내가 지켜내고

내 색깔은 내가 칠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싶었고,

나의 가정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어른으로서 성숙하게 남을 탓하지 않고
비록 서툴고 고단하더라도,

그 자리를 끝내 비켜서고 싶지는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진짜 독립은,
누군가가 나의 편에 서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두 발로 서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자신의 중심을 잃는 순간, 타인의 기대가 내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When you lose your center, other people’s expectations begin to rule your life.
— 버지니아 새티어(1916–1988), 미국 가족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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