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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나의 새로운 의존처

- 진정한 동맹이 아닌 또 다른 의존

by 파랑새의숲


엄마, 이제 내 살림 내가 할게요.

엄마는 제 집에서 이제 살림 마시고

그냥 놀러 오셔서 손님처럼 놀다 가세요.


수건 접는 법, 밥 하는 물 양 맞추는 법, 창문을 여는 정도 등등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도 친정 엄마의 손길대로 이뤄져야 하는 내 집에서, 나는 주인이 아닌 이방인이라 느꼈다.


그 문제로 고민하던 어느 날,

난 그렇게 엄마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내 살림이고, 내 집이고, 내 아이이니

이제 내가 스스로 다 하겠다고.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온 날, 엄마는 폭발하셨다.


“네가 어떻게 나를 밀어내냐!

네 아이를 키워주고, 집을 돌보고, 너를 위해 헌신한 나를

이 집에서 ‘손님’ 취급하다니!”


엄마의 분노의 말들이 쏟아질수록,

내 가슴에도 상처가 깊이 새겨졌다.

죄책감과 원망이 동시에 몰려왔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 자리를 되찾아야 했다.

이 집의 아이의 엄마로, 남편의 아내로.

그때 그 힘든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남편이 내 옆에서 나를 지지해 주며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의 갈등 속에서도 그는 내 편이 되어주었고,

그의 지지는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강력한 버팀목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더욱 그에게 의지하여 완전히 기대게 되었다.


“그래, 결국 우리 가족은 우리 부부와 우리 아이다.”


이 믿음이 내 안에서 확고해졌다.


앞으로는 내 아이를 내 손으로 직접 키우고,

잘 못하고 해 본 적 없어 서툰 살림도 다시 배우며,

나는 내 가정의 주인이 되려 애썼다.


물론 그 과정은 엉망진창이었지만,

동시에 내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보여주는 길이기도 했다.

어설프게 푸덕 푸덕 어떻게든 삶은 살아졌고,

너무 낯설던 것들도 결국은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엄마와의 건강한 거리도 결국 만들어졌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탈진할 만큼 힘들었지만,

마침내 내 삶, 내 가정의 주도권만큼은

조금씩 되찾으며 안정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서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던 남편은,

나의 가장 든든한 동맹자였다.

나는 마음 깊이 남편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예전에 엄마에게 그랬듯이.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반쪽자리 동맹이었다.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던 그 시간은,

나를 강력히 지켜주는 힘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더욱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을,

좀 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되었다.


엄마와의 거리 조절이 끝났다고 해서

내 독립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내 자리를 되찾았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그 자리를 남편에게 기대어 지켜내고 있었을 뿐이다.


새로운 의지처가 된 엄마 자리에,

그저 남편이 들어왔을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댈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믿음이,

곧 시댁이라는 새로운 전쟁 앞에서

가장 큰 상처와 배신감으로 돌아올 줄은

그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의존은 단순히 주인을 바꿀 뿐, 자유를 주지 않는다.
Dependence merely changes its master, it does not give freedom.

-서양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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