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롥호롞 Feb 07. 2020

애정결핍인 사람은 믿지 못하기에 사랑을 받지 못한다.

애정결핍을 갖고 있는 이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애정결핍을 갖고 있는 이들은 누군가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아도 사랑을 쉽게 느끼지는 못한다. 


달리 말해서 누군가는 작고 사소한 것에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반면에 애정결핍을 갖고 있는 이들은 극적이지 않으면 쉽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며, 설령 사랑을 느낀다고 해도 끊임없이 상대방을 의심하기 때문에 사랑의 당뇨를 앓고 있는 것처럼 사랑을 많이 받아도 금세 허기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주변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애정결핍을 갖고 있는 사람을 살펴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쉽게 사랑을 느끼는 반면에 애정결핍을 갖고 있는 이들은 웬만해서는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정결핍을 갖고 있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잘 믿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곧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가령 내가 지금 누군가와 만나고 있는데, 상대방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다고 해보자. 흔한 연애와 관련한 TV 프로그램의 사연처럼 나와 만나고 있는 상대방이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했다고 해보자.  


만약 내가 상대방이 바람을 피우고 있음을 알았다면 나는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게 될 것이며, 상대방이 그 어떤 사랑의 표현을 해도, 아무리 자극적이고 과도한 애정을 표현해도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데 상대방이 나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을 믿고 있다면 상대방의 작고 사소한 표현에도 쉽게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는 만큼 쉽게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내가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며,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쉽게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아무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고 믿는다면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애정결핍을 갖고 있는 이들이 사랑을 받아도 사랑에 목말라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 등을 토대로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에게 사랑을 준다고 해도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애정결핍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와 만나게 되면, 종종 상대방이 부담스럽게 느낄 정도로 집착하게 되곤 하는 것이다.  


가령 일거수일투족을 알려주길 바란다거나 혹은 잠시도 자신에게서 떨어지기를 원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등 자신을 위해서 상대방이 부담을 느낄만한 행동들을 자신에게 해줄 것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평범한 말이나 행동으로는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뭔가 극단적으로 상대방이 내게 사랑을 표현해주면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누군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아무리 극단적이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사랑을 표현해도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을 믿고 믿지 않고는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을 믿지 않는다면 나는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상대방이 그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내 마음이 열리기 전에는 상대방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애정결핍을 갖고 있는 이들은 사람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즉 아무나 믿거나 혹은 아무도 믿지 않아서 상처를 받고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믿고 한편으로는 의심하라고 말한다. 달리 말해서 무턱대고 믿지도, 무턱대고 불신하지도 말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서 알아가라는 것이다.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니면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나 신뢰해야 하는지 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상처를 받게 되면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철인이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존감이 높은 것이 아니라,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는 상황을 잘 만들지 않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내 자존감을 떨어지게 만드는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고 내 자존감을 높여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가까이하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면, 애정결핍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자. 그러면 내가 가까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내 자존감을 떨어지게 만드는 사람 혹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임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을 살펴본다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주변에는 그 사람을 존중해주는 사람들, 그 사람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가리지 않고 아무나 가까워지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는 사람과 가까이하면서도 자존감은 높은 것을 상상하고는 한다. 자신을 때리는 사람을 가까이하면서도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계속 때리고 있는데, 맞으면서 안 아프길 원하는 것은 조금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많이 맞아서 아프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맞으면서도 아프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나를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을 믿고자 한다면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믿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믿으면서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애정결핍이 있어서 다른 누군가의 사랑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사랑해줄 수 없는 사람이 내게 사랑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또 그런 믿음 때문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애정결핍 혹은 자존감을 높이고자 한다면 내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만을 사랑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애정결핍이 있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기대 혹은 믿음에 따른 결과를 얻은 경험이 없는 것과 같기에 믿어도 되는 사람은 믿고,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은 믿지 않아서 믿음에 따른 결과를 경험해야만 애정결핍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와 가깝던 혹은 가깝지 않던 내 믿음에 결과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믿고 내 믿음에 결과를 줄 수 없는 사람은 믿지 않아서, 사람들에게서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사랑을 믿을 수 있게 되고 또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력이 있다는 것은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과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