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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Apr 13. 2022

당근 마켓에서 반려식물 입양하기



나도 식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피아노 학원에서 유칼립투스를 보고 난 뒤, 말 그대로 한눈에 반해버렸다. 햇살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가는 나뭇가지, 빛 을 잔뜩 머금은 연녹색의 하늘하늘한 이파리와 나무 주변을 맴도는 청량한 향기까지, 한동안 그 예쁜 유칼립투스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실 유칼립투스는 식물 고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키우기가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은 식물이다. 당시에는 그런 사실조차 몰랐던 나는 무턱대고 중고 마켓에서 예쁜 유칼립투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굳이 첫 식물을 중고 마켓에서 들이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언제 내 손에서 죽을지 모름. 

2) 그래서 제값을 주고 새 식물을 사긴 어쩐지 부담됨. 


무엇보다 괜히 건강하고 어린 식물을 들였다가 아프기라도 하면, 더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식물 카테고리에 넘쳐나는 수많은 식물 중에서 유칼립투스 나무는 유독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어려웠다. ...불현듯 ‘대한민국 구천에 떠도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엄청나게 많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그만큼 키우기가 매우 까다롭고,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세 드라이플라워가 되어버린다는 그 무시무시한 전설… 


극강의 난이도를 앞에 주눅이 든 나는 유칼립투스에 대한 마음을 일단 접고, 다른 식물들도 천천히 살펴보기로 했다. 알로카시아, 산세베리아, 베고니아, 몬스테라… 중고 매물에 올라온 친구들은 각자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 촬영한 프로필 사진을 내걸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다양한 공간에서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함께 지내는 동안 참 많이 예쁨받았을 그들을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셀 수 없이 많은 식물들을 둘러보는 중 하얀 화분에 담긴 정갈한 식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3만 5천 원에 팔리고 있는 애매한 크기의 여인초였다. 널찍한 이파리가 어쩐지 바나나 잎 같기도, 《선녀와 나무꾼》 그림책에서 본 큰 부채 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 유니크해! 이렇게 멋진 이파리를 자랑하는 여인초만 있다면, 우리 집도 여느 리조트가 부럽지 않은 정말 예쁜 공간이 될 것만 같았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기르는 난이도도 쉬운 편이라고 한다. 예쁘게 생긴 이 녀석, 심지어 키우기도 쉽다니 이건 운명이다! 


그렇게 나의 반려 식물은 여인초로 정했다.

누군가 이 예쁜 아이를 채가기라도 할세라 마음이 급해져 재빠르게 거래 의사를 채팅창에 띄웠다.

 

‘안녕하세요~ 여인초 아직 판매 중이신가요?’ 


그렇게 일사천리로 약속 날짜를 잡고, 드디어 거래를 하는 날이 다가왔다. 판매자 아주머니는 그동안 무척 예뻐 했던 여인초라며,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실내로 들여야 하나 공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중고 매물로 올리게 되었다고 못내 아쉬운 투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를 빤히 보시더니, 묻지도 않은 여인초의 관수 주기부터 관리 방법을 하나 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이만큼 자신이 예쁘고 건강하게 키웠으니, 부디 다른 집에 가서도 잘 컸으면 하는 바람이 전해졌다. 아. 혹시… 내가 식물 처음 키우는 걸 눈치채고 가르쳐 주신 걸까? 그렇다면 아주머니, 정말 예리하시군요. 

그렇게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여인초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뒷좌석에 실었다. 아주머니가 여인초를 생각하는 마음을 떠올리니, 나도 그를 소중하게 다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데리고 온 뒤 조명을 켜고 여인초를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인초 이 녀석… 조명 아래에서 놓고 보니 정말 그는 실물 깡패였다. 어쩜 사진보다 이렇게 예쁠 수가, 넌 실물이 훨씬 예쁜 아이였구나…! 

그는 중고마켓 속 사진보다 훨씬 큰 이파리를 지녔고, 시원시원한 줄기를 자랑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을 모시게 되어 송구스럽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나저나, 나… 잘 키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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