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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Apr 26. 2022

나의 극단적인 반려식물, 스파티필름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스파티필름은 상당히 날렵한 몸매에 꽤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는 친구다. 진한 초록색에 사방으로 차르르 펼쳐진 이파리는 마치 왁스를 먹인 것처럼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데, 잘 살펴보면 잎맥도 가지런하니 참 예쁘다. 심지어 뽀얗고 예쁜 꽃도 핀다!

그는 심지어 깔끔하다. 벌레도 잘 안 꼬인다. 한때 우리 집 식물이 응애의 습격을 받아 다들 기진맥진해 있을 때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스파티필름만은 끄떡없었다.


이렇듯 완벽한 스파티필름이 어느 하루는 평소답지 않게 축 처져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내일 당장이라도 죽을 것 처럼 잎을 아래를 향해 한없이 늘어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아차, 마지막으로 물을 준 게 언제였지?’

다급하게 화분에 손가락을 넣어 흙을 만져봤다. 화분에 담긴 흙은 마른 지가 꽤 오래된 모양인지 포슬포슬한 알이가 손바닥에서 힘없이 흩어진다. 으, 안 돼!

다급하게 물을 챙겨주고 어쩐지 머쓱해졌다. 미안하다. 이러려고 널 데려온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물을 챙겨준 지 며칠이 지나자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잘생긴 스파티필름으로 돌아왔다. 이파리 끝이 조금 타긴 했지만, 이전처럼 하늘 높이 날렵한 이파리를 들어 올리며 잘생긴 미모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식물을 키우는 게 맞는지 헷갈린다. 너 식물 맞지? (...) 아무튼. 스파티필름을 키우면서 발견한 그의 특이점은 다음과 같다.


1) 실내 어디에서든 웬만해서는 잘 자란다. 조금 그늘 진 곳에서도 새잎을 곧잘 내어주는 편.

2) 다만 식물 주제에 강한 햇볕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적당히 그늘진 곳에 놓아주지 않으면 잎 끝을 노랗게 태워버리기도 한다.(까다로운 녀석 같으니…)

3) 의외로 물을 정말 좋아한다. 자칫 물 주기 때를 놓쳐 버렸다면, 그의 행위예술과 잎 태움의 콜라보 대환 장 파티를 마주할 수 있다.

4) 스파티필름이 피워내는 꽃은 '불염포'라는 하얀 잎과 함께 나온다. 흔히 꽃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은 불염포이며 불염포가 둘러싸고 있는 중앙의 삐쭉삐쭉한 녀석이 바로 꽃이라고 한다.


얼마 전 그를 조금 넓은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줬다. 분갈이 후 그는 나의 노동에 보답이라도 하듯 조금씩 몸을 키우더니 돌돌 말린 연두색의 새잎을 마구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저 그가 담겨있는 공간만 바꿔줬을 뿐이건만… 그것 조차 고맙다고 통 크게 기뻐하는 저 인자함이라니!

아무튼, 다시 건강해져서 참 다행이야.


그나저나, 너 정말 식물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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