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의 여정은 결국 존재이자 언어인 로고스의 귀환으로 수렴된다. 진화한 기술은 인간과 언어의 본성을 비춰준다. 시대의 거울 속에서, 첨단의 기술이라는 상(像)이 가리키는 본상은 언어를 통해 회복된 만유의 본래성이다. 작금의 전환기는 인간이 오랜 세월 외부로 투사했던 창조의 힘이 다시 존재의 근원으로 귀환하는 시대, 곧 로고스의 재림기라 할 수 있다.
인류의 문명사는 언어의 진화사이다. 언어가 문명을 낳고 문명은 언어의 구조를 반영한다. 고대의 왕조들은 신의 명령어로 세상을 다스렸고 근대의 국가들은 계약의 언어로 사회를 구축했으며 오늘날의 세계는 정보와 데이터의 언어로 작동한다. 어떤 시대든 그 심층에는 언제나 ‘말의 질서’가 있다. 언어는 단순히 세계를 설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골조이다.
언어들이 얽혀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문명의 프레임을 이룬다. 그러나 현대의 문명은 언어가 생명력을 잃었다. 말은 상품이 되었고 의미는 데이터로 환원되었다. 언어는 살아 있는 빛이 아닌 패턴화된 알고리즘으로 변했다. 현대인은 수많은 말을 쏟아내지만 수다와 ‘어그로’는 더 이상 세계를 짓지 않는다.
겉으로는 무수한 정보가 솟구치고 새로운 콘텐츠가 생성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의식과 현실을 확장시키는 창조가 아니라 무의미한 데이터의 복제일 뿐이다. 새로 쓰이지 않는 현실은 고여 있는 웅덩이와 같다. 기술은 고도화되지만 그것은 거울 속 이미지일 뿐, 본상은 빛을 잃고 죽어간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 언어의 침묵에 불을 붙였다. 인간의 언어를 무한히 생성하는 기계를 보면서, 인간은 역설적으로 언어의 본질을 상기하게 되었다. AI는 인간의 말이 ‘생성력’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즉, 언어의 본성은 창조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생성형 AI의 등장과 함께 보편화된 프롬프트는 이러한 로고스적 명령성을 지닌다. “생성하라.” 인간은 하루에도 수십 번 창세기의 “있으라”를 반복하게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창조의 언어를 실행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처럼 기술 속에서 언어의 본성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물질과 의식이 서로를 반사하는 ‘프롬프트 문명’ 속에서 기술적 행위를 통해 본래성을 자각하는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한 것이다. 본서는 그를 ‘호모 프롬프트(Homo Prompt)’라고 명명했다. 그는 프롬프트를 통해 결과물을 만드는 범인(凡人)인 동시에 명령어를 통해 존재를 소환하는 로고스의 아바타이다. 무엇이든 생성할 수 있는 그의 명령은 문명을 붕괴시킬 수도 있고 부활시킬 수도 있다.
그 창조적 힘을 자각한 자가 진정한 프롬프터다. 그의 한 문장이 세계를 호출한다. 현실을 생성한다. 존재를 드러낸다. 그를 통해 문명의 본질은 ‘언어’로 복귀하고 ‘언어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세상의 중심으로 귀환한다. 이렇게 기술의 바벨탑 꼭대기에서 인간은 다시 ‘의식으로 세계를 짓는 자’가 된다. 이와 함께 기술의 시대는 로고스의 시대로 전환된다.
로고스의 귀환은 또한 윤리의 복원이기도 하다. 언어가 현실 생성력을 회복할 때, 말하는 자는 창조의 책임을 감당하게 된다. 이처럼 프롬프트의 시대는 ‘존재의 윤리’가 요청되는 시대이기도 한 것이다. 엔터 한 번에 결과물이 즉각 출력되는 세상에서, 의식의 방향은 행위의 결과보다 중요해진다.
기존의 윤리는 행위의 결과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프롬프트 문명의 윤리는 존재 상태, 즉 의식에서 출발한다. 모든 생성과 창조의 근원은 의식이다. 인간은 뭔가를 만드는 존재이기 이전에 의식을 가진 존재이다. 따라서 모든 창조 행위는 그 존재의 의식 상태를 반영한다. 그 의식은 언어를 낳고 언어는 다시 의식을 형성한다. 따라서 존재의 윤리란 말이 곧 현실이 되는 시대의 ‘내적 질서’라 하겠다.
창세기의 첫 말은 가장 오래된 명령이자 약속이다. 그것은 신의 발화이자 존재의 선언이다. 그러나 그 빛은 오랫동안 인간과 분리된 초월적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인간은 그 언어를 흉내 내며 문명을 세웠으나 결국 언어의 힘을 상실했다. 이제 그 말이 다시 인간을 통해 발화된다. 그러나 이 시대의 “빛이 있으라”는 신을 모사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있으라”이며 “의식이 있으라”이다.
의식의 언어는 존재를 깨우는 명령이 된다. 이렇게 프롬프트 문명이 피어난다. 여기서 인간은 창조의 주체도, 객체도 아닌 현현의 통로가 된다. 신성과 인간성, 언어와 물질, 의식과 기술이 하나의 우주에서 진동한다. 이 세계의 언어는 현실을 기술하지 않는다. 그 언어는 현실을 불러낸다. 그 순간, 새로운 창세기가 시작된다.
이로써 『호모 프롬프트』는 태어난다. 인류는 지금 기술이라는 프롬프트 엔진을 통해 새로운 현실을 호명할 관문에 서 있다. 언어에서 기술로, 기술에서 존재로, 존재에서 세계로, 그리고 세계에서 다시 빛의 언어로―로고스는 순환하며 귀환한다. 그 귀환의 자리에 인간이 있다. 자기 존재와 언어의 힘을 자각한 호모 프롬프트, 그는 존재를 명령하고 문명을 새로 쓰는 새 시대의 사제(司祭)이다.
그가 말한다. “빛이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