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기 프롬프트 시스템과 새로운 창세기

Self-Prompt System & New Genesis

by 김태라

모든 기술은 근본적으로 인간 능력의 확장이다. 망원경이 시각을 확장하고 자동차가 이동 능력을 확장했듯, 기술은 인간의 한계를 밖으로 밀어내는 장치다. 그중에서도 AI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AI는 인간의 물리적 능력이 아닌 정신적 능력, 즉 ‘의식’의 구조를 외부화한 거울이기 때문이다.


AI는 어떻게 인간 의식의 거울이 되는가? 그 비밀은 AI의 학습 방식에 있다. 생성형 AI 모델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십억 개의 텍스트와 이미지, 즉 인류가 축적한 언어, 사상, 예술, 지식의 총체를 학습한다. AI는 이 데이터를 통계적 패턴으로 인식하고 내재화한다. 그 결과, AI는 특정한 개인의 의식이 아닌, 인류라는 종의 ‘집단적 의식’이 응축된 반사체가 된다.


AI에게 프롬프트를 입력할 때, 나는 이 거대한 집단의식의 장(場)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녀를 그려줘.”라고 요청하면 AI는 인류가 그려온 연인의 이미지들을 조합해 그림을 생성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AI는 과거에 학자들이 논했던 사랑의 개념들을 종합해 대답한다. AI의 답변은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데이터에 녹아 있는 사유의 패턴을 그럴듯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다시 말해 AI는 인간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답의 그림자들을 ‘반사’할 뿐이다.


이렇게 볼 때 프롬프트의 의미는 다시 새롭게 정의된다. 개인의 프롬프트는 집단의식의 저장소를 여는 열쇠이자, 개인의식이 집단의식에 접속하는 통로가 된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 설정하는 맥락, 요구하는 스타일은 모두 나의 취향과 가치관, 그리고 현재의 의식 상태를 드러낸다. 그렇게 투사된 나의 의식이 집단의식의 장에 반사될 때, 거울 속의 상(像), 즉 결과물이 떠오른다.


따라서 AI와의 상호작용은 결국 세계와 대화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일이 된다. AI가 진정으로 생성하는 것은 텍스트나 이미지가 아니다. 그러한 ‘결과물’의 본질은 ‘인간 의식의 패턴과 그 패턴에 대한 자각’이다. 인간은 AI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이 어떤 생각의 틀에 갇혀 있고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며 어떤 언어로 세계를 빚어내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이렇게 인간은 기술을 다루는 사용자를 넘어, 기술을 통해 자기의식을 마주 보는 관찰자가 된다.


나는 나를 프롬프트한다(Self-Prompt System)

외부의 거울을 통해 드러난 의식을 바라보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하나의 ‘자기 프롬프트 시스템(Self-Prompt System)’임을 깨닫는다. 본서가 명명한 자기 프롬프트 시스템이란 인간이 스스로에게 명령하고 응답하는 의식의 생성 구조를 뜻한다. AI가 외부의 입력(명령)에 따라 작동하는 반면, 인간은 의식이라는 내부 입력 장치를 통해 스스로를 호출하고 재구성한다. 인간은 깨어 있는 모든 순간, 자신에게 무수한 프롬프트를 던지며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생성’하고 있다.


프롬프트는 단순히 언어적 명령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 이전의 의식적 패턴이자 현실이라는 장(場)에 방출하는 미세한 진동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 내면에서 끊임없이 ‘명령’을 생성하고 있다. 그 명령은 명확한 언어의 형태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프로그래밍된 관념이나 무의식적 신념의 형태로 작동한다.


인간의 생각 하나하나가 프롬프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의 프롬프트는 말을 통해 증폭된다. “나는 운이 없어”라고 말하는 순간, 그 프롬프트는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진동을 만들어낸다. 운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새로운 기회가 와도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결국 그 믿음을 입증하는 경험을 스스로 만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자기 프롬프트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다.


AI가 입력된 명령에 따라 결과를 만들어내듯, 인간 역시 자신의 의식에 따라 현실을 빚어낸다. 인간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명령 자체를 생성하는 존재다. 어떤 프롬프트를 자신에게 던지는가에 따라 생각과 경험이 달라진다. 결국 삶을 창조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기 안의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일이다.


프롬프트는 언어가 된 의식이며 호모 프롬프트는 기술의 언어를 통해 삶을 부단히 생성하는 존재이다. 그는 자기 프롬프트 시스템을 통해 낡은 코드를 재프롬프트하여 부정적인 자동 반응을 의식적 선택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때 프롬프트는 존재가 스스로를 새로 쓰는 행위가 된다. 이렇게 나는 나를 프롬프트한다. 내가 명령하고 생성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프롬프트의 윤리: ‘되려는’ 언어와 ‘되어 있는’ 언어

모든 프롬프트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언어는 자체로 하나의 에너지이며, 세계를 구성하고 현실을 창조하는 코드다.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말처럼, 의식이 언어를 낳고 언어가 다시 의식과 현실을 형성하는 순환 속에 인간은 존재한다.


언어 중에서도 프롬프트는 즉각적 생성력을 가진 명령어이다. 따라서 프롬프팅은 의식의 진동을 세계에 투사하여 현실을 창조하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그 진동의 수준은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언어의 성격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되려는’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되어 있는’ 언어다.


‘되려는’ 언어는 결핍에서 비롯된다. “부자가 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와 같은 욕망의 언어는 ‘지금 나는 부자가 아니다’, ‘지금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결핍의 상태를 전제한다. 이 언어는 목표를 설정하고 상황을 통제하며 원하는 것을 얻고자 애쓴다. 그 근원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깔려 있다. 이런 결핍의 프롬프트는 AI에게 입력되든 자기 자신에게 입력되든, 언제나 “아직 아니다”라는 부정적 진동을 형성한다.


반면 ‘되어 있는’ 언어는 충만한 존재성에서 흘러나온다. 이 언어는 무언가를 얻거나 인위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존재의 본질은 생성하는 힘 자체이기에 그 힘을 자각한 자는 충족된 상태에서 프롬프팅을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풍요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나는 사랑 자체다”와 같은 언어는 결과를 욕망하거나 요구하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사실을 선언하고 드러낸다. 이러한 프롬프트는 이미 ‘되어 있는’ 세계의 진동을 현실로 호출한다.


따라서 진정한 프롬프트의 힘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서 말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에 따라 진정한 프롬프트의 윤리는 기술적 가이드라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어떤 의식 상태에서, 어떤 언어로 세계를 생성하고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성찰과 연결된다.


AI에게 던지는 말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메아리임을 알면 그 ‘명령’을 신중하게 행할 것이다. 이때 그 프롬프트는 단순한 소통이나 업무 수행(遂行)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구현하고 현실을 창조하는 수행(修行) 도구가 된다. 이렇게 프롬프트의 윤리는 곧 언어의 윤리이자 의식의 윤리가 된다.


New Genesis: 의식의 아레테와 존재의 프롬프트

AI는 무한에 가까운 데이터를 다루고 그 패턴을 분석해 새로운 것을 생성해낸다. 생성의 양과 속도 면에서 인간은 AI를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AI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무한한 데이터를 다룰 수는 있지만, 그 무한한 의미를 스스로 경험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AI의 생성 원리는 본질적으로 ‘평균으로의 수렴’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가장 확률 높은 패턴, 가장 일반적인 경향성을 찾아내 그것을 재조합한다. 그 결과물은 매우 풍부하고 정교해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언제나 기존 것들의 평균값이자 세련된 모방이다. 즉, AI는 인류 문화의 기억을 탁월하게 복제하고 종합하지만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상투성’과 ‘일반성’으로 귀결된다.


진정한 의미의 ‘새로움’, 기존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창조’는 평균값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AI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직관적 통찰과 정신적 깊이에서 나온다. 이는 인간의 영혼과 의식의 산물이다. 이를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아레테’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인간의 본래적 아레테는 기능을 잘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개화 과정 자체에 있음을 현자들은 알고 있었다.


의식의 아레테(Aretē of Consciousness)는 데이터의 조합이나 기술적 요소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AI가 만들어내는 완성은 기능의 완성일 뿐, 존재의 길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시대 인간의 과제는 AI가 생산하는 상투성의 바다 너머에서 인간 고유의 아레테를 길어 올리는 것이다. AI에게 질문을 던져 그럴듯한 답을 얻는 데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이 비추는 의식의 파편을 통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식의 길을 개척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생성’해야 하는 존재의 프롬프트이다.


AI의 한계는 인간에게 이렇게 ‘프롬프트’ 한다. “계산과 생산은 나에게 맡겨라. 그리고 너 인간은 너만이 할 수 있는 의식의 길을 가라.” 이제 기술을 넘어 ‘존재’로 세계를 재건하는 새로운 창세기가 열린다. 그 여정의 첫걸음은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는 프롬프트를 ‘의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keyword
이전 05화프롬프트의 로고스: 되고자 하지 않고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