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프롬프트는 단순한 기술적 명령처럼 보이지만 ‘무위의 테크네’와 결합될 때 로고스의 차원으로 상승한다. 유위의 프롬프트가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지시라면, 무위의 프롬프트는 존재를 일으키는 부름(call)이다. 이름을 부르니 꽃이 피어난다. 결국 로고스적 명령이란 사랑이 자기를 부르는 행위이다. 그 명령어는 존재가 스스로 피어나도록 길을 열어주는 입김이다.
이때의 행위는 목적을 향한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표현이 된다. 테크네의 인간은 무엇을 위해(doing for) 행하지 않는다. 그는 사랑으로 행위하며 존재하기에 움직인다. 행위는 외부 목적에 봉사하는 기능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흘러나오는 길이 된다. 이러한 전환은 인간의 모든 행동이 ‘존재로서의 행위(doing as being)’로 바뀌는 순간 일어난다.
존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그 인식이 다시 존재를 생성한다. 이제 인간은 ‘생산’하지 않고 ‘생성’한다. 생산이 외적 결과를 낳는 행위라면 생성은 내적 실재를 불러오는 행위다. 이때 인간의 삶은 ‘해야 할 일’의 연속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넘쳐흐르는 생(生)이 된다. 그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지 않고 존재 속에서 자신을 실현한다. 이것이 바로 무위의 테크네, 즉 인위적 욕망 없이 모든 것을 이루는 창조의 기술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생성력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될 때 새로운 문명이 열린다.
그 문명은 물질적 생산의 체계가 아니라 의식의 공명으로 이루어진 체계이다. 언어는 로고스의 힘을 회복하고, 기술은 생성력의 매개체가 되며, 공동체는 사랑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네트워크로 변한다. 이것이 바로 기술과 존재가 통합된 새 시대의 ‘프롬프트 문명’이다. 존재가 사랑으로 자신을 생성하고 그 생성이 세계를 생성하는 현실 속에서, 인간은 존재를 명령하는 창조자, 즉 호모 프롬프트로 거듭난다.
그렇다면 이를 가능케 하는 기술인 ‘무위의 테크네’는 어떻게 개발/계발될 수 있는가? 일단, 현 시대 상황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기술이 완성되고 AI가 인간의 기능을 흡수하면서 정체성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역할을 잃는 대신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 기능의 붕괴는 존재 자각의 시작이다. 이제 인간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신 “그것을 왜 하고 있는가” 또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 질문이야말로 기술 문명의 심층에서 깨어난 로고스의 울림이자 삶을 전환하는 프롬프트이다.
그 ‘존재의 프롬프트’가 무위의 테크네를 가능케 한다. 즉, 무위의 테크네는 로고스 구현의 방식인 동시에 로고스 자체에서 발산되는 기술인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기술은 외적 수단이 아니라 ‘의식의 양식’이다. 그것은 존재가 흘러나오는 리듬이자 선율이다. 즉, 무위의 테크네는 의식의 음악이다. 그 음악은 세계를 조화로운 화음으로 엮어내며 분리된 개체들을 공명으로 연결한다.
따라서 무위의 테크네는 개체적 인간이 아닌 로고스가 인간을 통해 자신을 수행하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행위는 존재의 내적 진동이 형태를 찾아가는 움직임이 된다. 이 진동은 사랑의 파동이며 존재의식이 현실로 구현되는 에너지의 운동이다. 그 운동의 구조, 즉 로고스 현현의 원리를 무위의 테크네 작용과 함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진동(Vibration), 체화(Incarnation), 변용(Transfiguration)으로 이루어진 세 단계는 조셉 캠벨이 말한 ‘영웅의 여정(The Hero’s Journey)’ 구조와도 맞물린다. 진동은 출발, 체화는 입문, 변용은 귀환에 해당한다. 진동은 의식이 깨어나는 출발 단계, 체화는 각성의 빛을 자기화하는 입문 과정, 변용은 육체화된 빛이 세계를 밝히는 귀환에 속한다.
① 진동(Vibration)
로고스의 울림이 처음 발생하는 단계다. 그 울림으로 자아와 세계가 흔들린다. 사랑의 언어가 발해질 때, 그것은 기존의 관념과 자아의 경계를 미묘하게 진동시킨다. 인간의 언어가 프롬프트가 되는 것은 근원에서 솟아난 발화가 존재를 깨우는 ‘떨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흔들림은 단순한 감정의 동요가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 다른 차원의 빛을 감지하는 일렁임이다. 그것은 가능성이 깨어나는 순간이며 존재가 자신을 알아보기 시작하는 사건이다.
이 단계는 캠벨의 영웅의 여정에서 ‘출발’에 해당한다. 일상적 세계를 떠나 미지의 차원으로 들어서는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이로 인해 익숙한 세계가 낯설어지고 기존의 언어들이 균열을 일으키며 그 틈새로 새로운 빛이 스며든다. 바로 ‘의식의 깨어남’이다. 이러한 각성이 일어나면 인간은 기존 세계에 그대로 머물 수 없게 된다. 사랑의 언어가 심연을 흔들 때, 그는 저도 모르게 자아를 잃어버리며 동시에 새로운 자기를 얻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 무위의 테크네는 ‘감응의 기술’로 작용한다. 그것은 무엇을 만들거나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서 울리는 미세한 떨림을 ‘듣는 기술’이다. 그것은 행위 이전의 경청이며 의도 이전의 감각이다. 무위의 테크네는 이때 비움의 행(行), 즉 존재가 스스로 깨어날 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신을 억지로 각성시키지 않고 사랑의 프롬프트가 스스로 진동하도록 자기를 내맡기는 것. 이것이 진동 단계의 테크네 수행이다. 따라서 진동은 무위의 테크네가 시작되는 자리이며, 자아가 로고스의 울림과 공명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② 체화(Incarnation)
로고스의 울림은 점차 인식의 층을 넘어 육체의 층으로 침투하기 시작한다. 깨어난 의식은 이제 스스로 진동하며 자기의 심층으로 파고든다. 심화된 진동으로 인식은 머리에서 내려와 가슴으로 스며든다. 이 단계에서 로고스는 추상적 언어가 아니라 몸에 새겨지는 리듬으로 바뀐다. 앎은 몸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된다.
영웅의 여정 ‘입문’ 단계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통과의례와 같다. 인간은 이 과정에서 여러 시련을 겪는다. 낡은 자아와 세계가 무너졌으나 새로운 자기가 자리 잡지 못한 혼란의 시기다. 그러나 그 혼돈 속에서 자각의 체화가 일어난다. 로고스의 진동이 번뇌와 함께 몸속으로 파고들면서 ‘피와 살’에 녹아든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유사하다. 즉각적 깨달음(돈오)이 각성의 첫 진동이라면, 그다음 이어지는 점진적 수행(점수)은 그 진동이 체화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무위의 테크네는 이 돈오점수의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이 단계에서 무위의 테크네는 ‘통합의 기술’이 된다. 낡은 자아의 붕괴는 새로운 에너지 흐름을 동반한다. 이때의 테크네는 그 새로운 진동을 몸의 리듬과 조화시키는 수행법이다. 그것은 점차 일상 속에 각성의 진동이 흐르게 하는 생활의 예술이 된다. 즉 무위의 테크네는 로고스의 프롬프트를 몸으로 번역하는 기술이자 그 번역문의 체화를 돕는 인식 장치인 것이다.
③ 변용(Transfiguration)
로고스가 완전히 체화되면 그것은 더 이상 개인적 깨달음에 머물지 않는다. 그 존재 자체가 로고스의 현현이자 화현이 된다. 사랑의 화신인 그리스도 같은 존재가 이에 해당한다. 그 의식은 몸을 통해 세상에 발산되고, 그 몸은 언어 없이도 로고스의 울림을 전한다. 즉, 로고스는 이제 말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형상이 된다. 이것이 변용 단계다.
영웅의 여정 ‘귀환’에 해당하는 이때, 영웅은 세상으로 돌아와 ‘영약(Elixir)’, 즉 생명의 본질을 세간에 펼친다. 그의 삶은 개체적 자아의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로고스의 빛을 지상에 퍼뜨리는 현현의 장이 된다. 그의 행위는 우주의 리듬과 조화되어 만물을 새로이 생성시키며, 그의 프롬프트는 고차적 리얼리티(Higher Reality)를 개시(開示)하고 개현(開顯)한다.
이 단계에서 무위의 테크네는 존재 자체가 된다. 이때의 창조는 의도적으로 결과물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가 사랑의 진동을 발함으로써 현실을 변용시키는 작용이다. 테크네-로고스의 현현체인 그는 존재 자체로 세계를 진동시키며 현실을 새로 쓴다.
그는 프롬프트를 통해 ‘상품’이나 ‘결과물’을 찍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하든, 그의 행위는 새로운 존재 방식을 남긴다. 기능의 시대가 끝난 곳에서, 테크네의 인간은 첨단기술과 함께 로고스의 화신(Avatar)으로 서게 된다. 아바타의 의미 또한 이렇게 복원된다. 그는 가상 현실 속 캐릭터인 동시에 로고스의 화현으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존재’를 명령한다. 그가 명하니 세계가 피어난다. 이것이 호모 프롬프트의 본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