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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30대 모태솔로의 고백법

꽃과 편지, 그리고 진실된 마음

by 해태쀼

22년 1월 16일. 68번째 그녀와의 소개팅은 앞선 67번의 소개팅과는 사뭇 달랐다. 서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대화로 인해 사운드가 비어있을 틈이 없었다. 첫 째 날은 세 시간, 그다음 날인 1월 17일 둘째 날은 일곱 시간, 이틀간 열 시간의 대화에도 지루함이 없었다. 두 번의 만남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직감했다.


소개팅은 이걸로 끝이다



두 번째 만남 이후 고백하기로 마음먹다


연달아 이틀간 대화가 잘 되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겉핥기식으로 서로를 알아보는 불안정안 썸남썸녀 관계를 청산하고 빨리 안정된 연애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조급함을 상대방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조급하면 실수하게 되고 자칫 잘못하면 비굴해 보인다. 순식간에 갑-을 관계가 돼버리고 만다. 또한 조급함으로 인해 그동안 어필했던 나의 매력이 잊히고 상대방은 연애의 시작을 주저하게 된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조급함을 가장 경계해야 함을 다시 한번 리마인드 한다. 연애를 해보지 못한 30대 모태솔로는 이 부분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당시의 나 또한 알고 있었다. 상대가 좋을수록 상대가 나를 생각할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전 소개팅으로부터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마냥 상대를 기다리게 할 수만은 없었다. 상대방 또한 나에 대한 호감이 있다면 서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너무 시간을 끌면 서로 가졌던 호감과 설레는 긴장감은 느슨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나와의 관계를 점차 정리하고 또 다른 사람을 알아볼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민한 끝에 세 번째 만남에서 고백하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였다. 좀 더 신중하게 네 번째나 다섯 번째 만남에서 고백하는 것도 잠깐 고려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신중함이 아니었다. 신중함은 상대방에 대해 긴가민가할 때 필요한 자질이다. 상대의 어떤 부분은 좋지만 다른 부분은 애매해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을 때 '신중함'이 필요한 것이다. 당시 나에게는 상대방에게 확신을 주는 태도와 결단력이 필요했다. 이틀간 10시간이나 서로 끊임없이 대화를 했는데 고백도 안 하고 세 번 네 번 만나는 것이 영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가장 적절한 고백 타이밍은 '세 번째 만나는 날 헤어지기 바로 전'이었다.



꽃과 편지, 진심 어린 마음이면 충분하다


22년 1월 19일. 그날은 직장의 자율출퇴근제를 이용하여 일찍 퇴근했다. 차를 가지고 그녀 일하는 회사로 향했다. 수원에서 역삼까지 차는 밀렸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미리 써둔 편지를 재킷 안주머니에 고이 넣고, 편지가 잘 있나 재차 확인했다. 편지지에 옅게 뿌린 향수 때문인지, 편지를 만진 손을 자꾸 코에 가져다 대고 연신 향을 맡았다. 약속 시간보다 한참 일찍 도착하여 회사 근처에 차를 대고, 꽃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꽃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고백할 때 제일 어울리는 꽃다발 포장해 주세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리시안셔스는 꼭 포함해 주세요.


그녀는 리시안셔스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었다. 꽃다발을 들고 그녀가 감격해서 우는 상상을 하며 흐뭇하게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꽃다발은 차 뒷좌석에 잘 숨겨두었다.


일을 마친 그녀와 약속장소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수원에서 어떻게 이렇게 멀리까지 왔냐며 반가워했다. 자율출퇴근이 가능한 회사를 다닌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앞서 보낸 두 번의 만남에 이어 세 번째 만남에서도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녀를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도.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했을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대화는 많았고 그저 좋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벌써 도착한 그녀 집 앞. 시간이 늦었으니 얼른 들어가라고 재촉하는 나의 말을 뒤로하고, 그녀는 가족들에게 "나 오늘 좀 늦어요"라고 카톡을 보낸다. 통금시간이 있는 그녀였지만 그렇게 차에 시동을 켜놓고 한 시간을 더 얘기했다.

...

이야기가 점차 사그라들 무렵. 드디어 때가 왔다. 나의 비장의 무기인 꽃과 편지를 전달할 시간. 심장이 요동친다. "잠깐만요. 줄 게 있어요." 부스럭부스럭 차 뒷좌석에 숨겨둔 꽃다발을 건네주며, 품 속에서 편지를 꺼내 꽃과 함께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의 반응을 살핀다. 감격해서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내가 꽃과 편지를 줄줄 몰랐다며 분명 좋아하고 있었다.


비장의 무기 1



사귀자는 표현 하지 않고 연애하기


나는 편지로나 말로나 사귀자는 표현이 하기 싫었다. 사귀자는 표현이 가벼워 보이고 어려 보였다. 10대 20대의 언어가 아닌 30대의 언어로, 진심 어린 표현을 하고 싶었다. 함께하는 미래가 그려지도록 표현하고 싶었다. 컴퓨터 메모장을 켜고 한 문장 한 문장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ㅇㅇ씨와 함께한 대화가 즐거웠고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힘을 얻었어요."

"그동안 ㅇㅇ씨와 같이 밝고 따뜻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ㅇㅇ씨가 만나고자 했던 사람처럼 되고자 열심히 살아왔어요."

"ㅇㅇ씨와 무언가를 함께하는 미래가 그려져요."

"각자 말고 이제는 같이 성장해나가요."


나이 서른다섯 살 먹고 처음으로 편지로 고백해 본 나 자신을 칭찬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그녀가 거절할 것 같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와 그녀로부터 걸려온 전화 너머로 상기된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오늘부터 1일이에요


만세. 68번의 소개팅을 거친, 서른다섯 살의 모태솔로 탈출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더 이상의 소개팅은 없었고, 1월 중순에 처음 만난 우리는 5개월이 지난 그 해 초여름날 결혼했다.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몰라 벌벌 떨면서 이성과 대화했던 첫 번째 소개팅이 생각난다. 1000만 원가량의 소개팅 비용과 3년 여의 기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있도록 나에게 실제적인 깨달음과 자기 계발의 동기를 준 67 명의 무자비한 교관들에게 이제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받아준 그녀에게도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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