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는 여전히 차갑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은 손끝을 스치며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아직 겨울이야.’ 그 속삭임이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아 잠시 눈을 감아본다. 그러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느릿하게 다가오는 봄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언제부터였을까. 계절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낯설어지기 시작한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한 계절이 떠나고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는 일이 그저 반복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눈 녹은 자리마다 피어나는 작은 초록빛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날, 오래된 친구가 말했다. “봄은 기다림 속에서 찾아오는 법이야. 아무리 춥고 길었던 겨울이라도,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봄은 와.”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기다림은 때로 고통스럽고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그 끝에서 만나는 순간은 늘 우리를 새롭게 한다.
나는 올해의 봄을 조금 더 느긋하게 맞이해보기로 했다. 창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햇살의 길이를 따라 걷는 시간을 늘려갔다. 길가에 떨어진 낙엽을 바라보며, 그 위에 피어난 새싹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봄이 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어느새 다가왔더라고. 그러나 사실 봄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가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가장 소중한 순간들은 우리가 바쁘게 지나칠 때, 그 자리에서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처럼 말이다.
봄이 오는 마음은 다르다. 기다림 속에서 설렘을 배운다. 떠나간 계절에 대해 고마워하며, 새롭게 맞이하는 시간에 기대를 품는다. 그 마음이 우리의 하루를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올해의 봄은 그렇게 내게 조금 더 특별하다. 나는 더 많은 것을 보았고, 더 많은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다짐한다. 지금 이 순간의 계절도, 마음속 작은 새싹도 잊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