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삶은 계절을 따라 흘러간다. 겨울의 시작, ‘소설(小雪)’이란 이름처럼, 그 겨울의 첫눈처럼 차분하게 다가온다. 아무리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라도 첫눈을 맞이하는 그 순간, 어딘가 알 수 없는 감정을 품게 된다. 추운 바람 속에 눈이 내려앉고, 그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린다.
어쩌면 첫눈은, 오래된 기억들이 뒤척이며 잠시 깨어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부터 그 겨울을 좋아했는지, 내가 언제부터 첫눈을 기다리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그저 신기한 눈송이 하나하나가 반짝이며 내려오는 모습에 감탄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눈을 보고도 그저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에 잠기게 된다. 겨울은 언제나 그리움과 함께 찾아오고, 그리움은 사랑과 함께 묶여 있다.
어느 겨울, 내 삶의 중요한 순간이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그때,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그녀가 내게 이야기해준 것은 간단했다. "첫눈이 내리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말은 그때 당시엔 깊게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첫눈이 내리는 순간,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마치 그날 이후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는 것을.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기도 했다. 그녀는 결국 내 손을 놓았고, 나는 그 후로 몇 번이고 겨울이 지나갈 때마다 그녀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움보다 감사의 마음이 더 커져 있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나는 혼자 서 있을 때가 많았지만, 그 겨울, 첫눈이 내려올 때마다 나는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며,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리움에서 벗어나, 새로워질 수 있을까?"
겨울은 항상 그런 질문을 남기고 간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기억들은 얼어붙지 않는다. 그 자리에 눈이 내려도, 그 자리는 그대로다. 그때의 나는 언제나 나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첫눈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그 질문을 떠올린다. "새로워질 수 있을까?"
소설(小雪), 작은 눈이 내려오는 이 순간을 맞이하며, 우리는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겨울은 지나가고, 우리는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첫눈처럼, 작고 조용하게,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억처럼. 그리고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