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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Dec 14. 2024

눈 덮인 풍경


겨울이 오면, 늘 그 여자가 생각난다. 몇 해를 만났던 그 사람. 그 때는 서로가 지나치게 중요한 존재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점차 흐릿해진다. 눈 덮인 풍경처럼, 그때의 감정들도 이제는 희미해졌다.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은, 마치 지금은 멀리서 바라본 그림처럼 왜곡되고, 손끝에 닿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변해버렸다.


그때의 사랑이 무겁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어쩐지 홀가분해졌다. 그녀를 떠올리면, 이제는 그리움도 미련도 남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감정 없이 그저 스쳐 지나간 일처럼 느껴진다. 한때 나의 하루를 온전히 차지했던 그녀가 이제는 그저 '옛날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더 이상 마음이 떨리지 않고, 그리워지지도 않는다. 그녀는 이제 나의 과거일 뿐이고, 나는 그때의 우리가 걸었던 길을 다시는 걷지 않을 것이다.


눈이 내리는 겨울, 내가 서 있는 곳은 그 길과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다. 추운 공기 속에서 나를 비추던 따뜻한 빛은 이제 사라졌다. 그때는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따뜻함마저 잊혀지는 것 같다. 우리가 함께 나눈 일상들, 손끝에 닿았던 온기들은 지금의 내가 손쉽게 버릴 수 있을 만큼 가벼워졌다. 그때,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서로를 붙잡으려 했는지, 그 이유는 이제 모르겠다. 그저 지나간 일일 뿐이다.


눈덮인 풍경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그 길 위에서 남긴 우리의 발자국들은 어느새 눈 속에 묻혔고, 아무리 돌아봐도 그 흔적은 사라졌다. 비어버린 마음 속에서, 그녀의 이름조차 무겁지 않다.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그 흔적들조차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그녀와의 시간은, 내 삶에서 단지 지나온 한 페이지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페이지를 넘기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녀를 어떻게 사랑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사랑도 결국 지나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이제는 그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얼마나 뜨거웠는지에 대해 묻지도 않는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고 했지만, 그 봄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나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제 그녀는 나에게 더 이상 그리운 존재가 아니다. 그저 지나간 사랑의 기억일 뿐.


나는 눈덮인 풍경 속에서 그때의 모든 감정들을 묻어두고 있다. 그 감정들이 사라지도록, 더 이상 그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도록, 시간이 흘러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추운 바람 속에서 점점 더 멀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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