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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기억

by 아무개


새벽 세 시 마흔 분 식탁에 떨어진

형광등 불빛이 창백한 손목을 핥는다

찬장 속 국화차는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네가 쓰다 만 편지는 창가에서 떨고 있다


어머니는 매일 밤 거울을 닦았다

손끝에서 떨어진 물방울마다

뼈가 되어 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이제 물의 무게를 안다


창밖엔 여전히 겨울

깨진 체온계처럼 수은이 흘러내린다

마트 카트 끄는 소리 개 짖는 소리 구급차 사이렌

도시는 밤의 장기를 하나씩 적출한다


녹슨 맨홀 뚜껑 위에 핀 민들레

밴드처럼 떼었다 붙였다 떼었다 붙였다

쓰레기봉투를 찢고 나온 달빛

모든 상처는 제 시간에 꽃이 된다


냉장고 두드리는 소리

또각 또각

너의 뼈마디가 문득 그리워

혀끝을 깨문다

우리는 늘 이렇게

서로의 살점이었다


시계는 다시 거꾸로 돈다

마지막 전철이 지나간 자리

레일 위에 떨어진 성에가

누군가의 척추를 닮았다

시간도 잠든 밤

나는 물이 되어 흐르지 않는다


아침이 오면 우리는 모두

서로의 잠든 얼굴이 되어

거울 속에서 만난다

말해보자 이제

누가 누구의 기억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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